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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치 팝스의 이단아, 미셸 뽈나레프
기사입력  2007/03/13 [00:00] 최종편집   


(음악세상)
프랜치 팝스의 이단아, 미셸 뽈나레프

한때 프랑스를 대표하는 프랜치 팝스의 대표적 아티스트인 ‘미셸 뽈나레프(Michel Polnareff)’처럼 우리나라 올드팬들의 향수 속에서 은근한 사랑을 받는 샹송가수도 흔치 않다. 1944년생이니, 어느덧 뽈나레프의 나이도 올해로 63세이다.

70년대 중, 후반에 특유의 아름다운 고음으로 멋지게 부른 Holidays라는 노래로 수많은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는 젊은 시절 한때 집시처럼 유럽을 떠돌던 유랑생활에서 얻어진 자유분방함과 더불어 파격적이고도 독특한 패션으로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의 대중적 우상으로 떠올랐던 아티스트이다.

프렌치 팝스란 프랑스 정통의 샹송 분위기에 팝 적인 리듬을 가미한 스타일의 노래로, 샹송이 가지는 고풍스럽고도 낭만적인 분위기에 팝을 혼합한 프랜치 팝스는 전통적으로 낭만과 예술성을 내세우는 샹송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혹평과 더불어 샹송의 한계를 개량한 과감한 시도의 성공이라는 찬사를 동시에 얻기도 했다.

미셸 뽈나레프는 설명이 필요 없는 프랑스의 유명한 러시아계 작곡가 레오 폴의 아들로써, 아들을 음악가로 성장시키기 위한 부모의 노력으로 불과 다섯 살 때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기 시작해 13세에 이르러서는 직접 샹송을 작곡하거나 재즈나 록 등의 분야에도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명성을 틀림없이 이어나가리라는 아버지의 레오 폴의 기대와는 다르게, 군 입대를 계기로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켜 풍족하고 유복한 환경을 박차고 나가 집시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정처 없이 떠돌며 방황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그가 가지고 있던 음악적 재능과 피아노 솜씨를 아깝게 여긴 방랑 친구의 권유로 66년 프랑스 음악계에 데뷔, 첫 싱글로 발표한 La Poupee Qui Fait Non(농농인형)은 그리 기대를 걸지 않았던 예상을 뒤엎고 연일 히트 차트를 석권하며 전 프랑스를 휩쓸었다.

특히 방랑생활을 통해 굳어진 자신의 자유로운 사상을 작품에 담거나, 사회의 관념에 반항하는 듯 한 그의 언행이나 특이한 옷차림 등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프랑스 젊은이들의 열띤 환영을 받으며 각종 연예잡지의 브로마이드(대형컬러화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66년 여름에 발표한 후속곡 Love Me, Please Love Me와 La Mour Avec Toi(당신과의 사랑)의 히트는 뽈나레프에게 프랜치 팝스의 귀공자라는 평가와 함께 그에게 최대의 전성기를 안겨주게 되었다.

73년 프랑스 올랭삐아 극장에서 열렸던 그의 콘서트에는 뽈나레프 자신의 알몸사진이 실린 대형 포스터가 곳곳에 나붙어 La Mour Avec Toi의 가사처럼, 사회적 관습을 무시하고 자신의 자유로운 애정관을 담은 그의 음악 사상이 그대로 표현되었다는 비평도 얻게 되었다.

72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얻는 Holidays가 발표되어 젊은층들의 사랑 속에서 널리 애창되었고, Qui’ A Tue Grand Mamanqaz(누가 할머니를 죽게 했을까)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통해 비극적으로 묘사되었던 “5월”이라는 시민운동가의 골격이 되었다.

또 우리나라 가수 오태호의 자작곡인 “기억 속의 멜로디” 전, 후반에 이 노래의 멜로디가 삽입되어 친숙한 멜로디로 사랑받기도 했다.

일상이나 무대에서도 평소 검은 선글라스를 좀처럼 벗지 않아 실제의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그는 자신의 눈이 가장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눈을 숨기기 위해서라고 알려지고 있다.

프랜치 팝스 역사를 통해 가장 인기 있는 귀공자로 한 시대를 통해 숱한 일화를 남긴 미셸 뽈나레프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앞머리가 벗어지고 덥수룩한 수염도 기른 노년의 모습이지만, 즐겨 쓰는 특유의 선글라스와 패션 감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타는 그의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문득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도 함께 가슴을 스친다.

(할러데이즈, 오, 할러데이, 쎄라비온 키브 소디스겔~~ 디스우르므와르 수넷 이르비유르화스~ 크렙테디빠스 할러데이....)

성지인/ 인터넷팝컬럼니스트
재창간 42호 2007년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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