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이불사(學而不思)과 오래된 미래
지난 5월 고교 정규 수업 시간에 ‘인공지능(AI) 교사’가 도입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요즘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학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이유인즉 스마트폰으로 궁금증의 대부분을 쉽게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굳이 선생님께 질문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교사의 역할이 ‘티칭’에서 ‘코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다. 쓰나미보다 더 무섭고 충격적인 제3의 물결이 학교 현장으로 밀어닥치고 있다. ‘지금의 이러한 변화가 바람직한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냥 강한 조류에 모두가 밀려가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의 제목처럼, 2500년도 넘는 시대의 인물이 남긴 글 속에 그 해답이 녹아 있는 듯하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이라는 말씀이 새삼 눈에 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되새김질하지 않는다면 그 배움은 빈껍데기일 뿐이다. 배우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대상으로 가장 좋은 대상이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일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그럴 여유도 시간도 주지 않는다. 참된 학문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인데, 온통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 그리고 좌절을 겪으면서 무력감에 빠진 듯하다. 불확실과 혼동의 어두움 앞에서, 자유조차 부담스럽다. 나 대신 말하고 행동해 줄 아바타에 대한 허망한 꿈을 꾸게 된다. 정치인들은 이들의 좌절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대변인인냥 자처하며, 극단적 지지를 통해 혁명을 이루자고 유혹한다. 온통 선동가들의 나팔 소리로 시끄럽다. 하루 쯤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오래된 미래’인 성현들의 말씀 속에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