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저널

칼럼   특별연재(지구온난화)   환경   선거일기   의학칼럼   기고   음악칼럼   산행기행   영화칼럼   유종필의관악소리   교육특별연재   신년사
호별보기 로그인 회원가입
컬럼
칼럼
특별연재(지구온난화)
환경
선거일기
의학칼럼
기고
음악칼럼
산행기행
영화칼럼
유종필의관악소리
교육특별연재
신년사
개인정보취급방침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컬럼 > 컬럼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용서의 미학
기사입력  2009/09/16 [00:00] 최종편집   
(시사칼럼)
용서의 미학

나는 이것이 2pm의 노래다 하고 노래를 들어보지 않았다. 단지 누나들도 좋아하는 멋진 소년들의 그룹이라는 말만 들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멤버인 재범이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게 요즘 문제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어디에 그 글이 실렸는지, 그리고 그를 비난하는 글이 또 어디 실렸는지 그것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또 그룹을 떠나서 벌써 미국으로 가버렸다고 하니 대체 이런 일들이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지 참 의아하다.

게다가 사장이라는 박진영씨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가수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하고, 그러면 그만 두면 안 되는 것이다 싶은데, 박진영씨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되니 그의 결정을 존중해주자고 말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그 말에도 귀를 기울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조금 용서하는 것을 하지 못해서 큰 분란이 일고 나라가 혼미했던 것이 얼마 아닌데, 말하자면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네티즌들이 분개하고 일어나는 바람에 개인과 그의 소속사에서 탈퇴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네티즌들은 용서하지 않고, 소속사는 그 흐름을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인간을 없는 채,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그런 결론에 대해서 다시 네티즌들이 분개하고 그런 사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말들이 인터넷에 떠오른다.

내가 궁금한 것은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용서가 없나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민족도 아니고, 그 비하했다는 이야기도 한참이 지나간 이야기라고 하는데 말이다. 물론 참기 어려울 만큼 비하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은 된다.

나는 포스트모더니티가 도덕적으로 말하면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용서를 배워서 지탱시켜 나가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급작스런 정의를 한 번 내려 봤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과거의 어른들과는 달리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인정하고, 그래서 네가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모난 눈을 하고 그러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래야 앞으로의 사회가 무난히 배겨 나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재범이라는 그 가수가 그만 미국으로 가고 말았다. 그가 아무리 반성한다 말하고, 사장은 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럴지라도, 그것은 인생의 큰 시련이 아닌가? 그는 또 굳이 찾아온 이 조국 땅을 잘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용서하기도 힘들고 용서받기도 힘들고 그러면 우리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어른 되어서 살아가야 할 세상이 너무 팍팍해 보인다. 다른 것 아니고 용서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간단한 문제 때문이다.

재범이라는 그 아들 같은 젊은이를 빌미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는다는 것도 실은 죄스럽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용서도 하지 않고 쫓아버린 사람을 유비로 삼아서 이야기 한다면 그 사람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그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야기하고 싶다.

이렇게 엄청난 글들이 오고 가고, 그 글들이 섬뜩할 정도로 오랜 세월, 어쩌면 내가 죽고 나도 내 글은 인터넷에 살아 있을 바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더 많은 것을 용서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쓴 글도 촉을 잡기로 하고 뒤지기 시작하면 결국은 버텨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그만 절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 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세상, 정보 폭발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정신에는 용서라는 이념이 가득히 들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판국에 어느 편에 서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 결론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났으면 좋겠는데, 아주 선명한 한 가지 바람은 우리의 젊은 사람들이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별 수 없이 미래를 오늘의 청년 청소년에게 맡겨야 하는데, 솔직히 좀 두렵다. 어른들이 먼저 용서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구체적인 방법일 것 같다. 용서의 미학이 생겨나거나 다시 살아나거나 그래야 한다.

안영혁/ 예본교회 담임목사
재창간 102호
ⓒ 관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미투데이 미투데이 페이스북 페이스북 요즘 요즘 공감 공감 카카오톡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주간베스트 TOP10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44길 35 대표전화 : 02-889-4404ㅣ 팩스 : 02-889-5614
Copyright ⓒ 2013 관악저널.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linuxwave.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