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치한 현수막에 분노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치하는 여야 정치인들이 덕지덕지 붙인 현수막의 문구를 읽으면서 분노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가끔 초등학교에서 ‘쟤가 선생님 책상에서 분필 가져갔어요!’라며 고자질하는 것을 봤어도 중학생이 되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겨우 몇 살 차이인데, 그만큼 의젓해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어야 할까? 국회의원 한 명에 수십억 원의 세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고, 게다가 국제적으로 경제와 환경 문제로 촌각을 다투는 중차대한 시기에 초등학생처럼 서로 고발하는 모습이라니....그저 상대방이 잘못하기만을 기우제 지내듯이 기다리다가, 틈만 생기면 비난하고 비판하기에 바쁘다. 비판과 타협을 통해 성숙한 정책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동반하락과 국가경제 붕괴로 치닫게 만든다면 역사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일본은 그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만들었다. 그들이 가장 아프게 비판했던 것이 ‘사색당쟁’이었다. 동인⦁서인⦁남인⦁북인으로 갈라져서 비판하고, 탄핵했던 과정을 당쟁(黨爭)이라고 규정하면서 ‘자나 깨나 싸움질만 하니 조선은 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쟁(政爭)이라는 과정을 통해 최선을 찾아가는 정치적 논쟁(論爭)이었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 여야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을 보면, 과거 일본의 뼈아픈 지적이 고개를 치켜든다. 이런 모습이 건강한 정치적 논쟁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눈에도 논쟁이 아니라 ‘싸움질’로 비친다면, 여야 정치인들은 석고대좌하면서 반성해 할 것이다.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지만, ‘이러면서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던 일본의 학자들의 말이 맴돌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조선의 일부 관료들이 ‘서민의 피를 빨았던 기득권층’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농민 봉기의 단초가 되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역사 앞에서 겸허하게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며, 역사의 기록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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