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벌거벗은 임금님과 추종자들
어릴 때 읽었던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른다. 동화에 나오는 재단사라는 자들은 처음부터 작심하고 ‘환상의 날개옷’으로 사기를 쳤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세 가지가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어리석고 무능하여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임금, 둘째는 무조건 임금에게 아부하고 추종하는 신하와 마지막으로 그런 환상에 호응하는 어른이라는 군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대선 정국을 바라보면, 뭐가 진실인지 너무 헛갈리는 환각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어른으로 표현된 군중들은, 임금님이 벌거벗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오히려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짓에 동조했다. ‘환상의 날개 옷’에 대한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많은 추종자들의 확고한 자신감과 환호의 박수 소리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동화 속에서 진실을 보고 말하는 대상은 아이들이었다. 성경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너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고 정직하기 때문에 이해타산을 고려하지 않고 보는 대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나에게 해(害)가 없을지를 먼저 고려한다.
과거에는 ‘나라가 어지럽고 어려워서 진실을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때’ 민중을 이끌고 중심을 잡아 주던 지성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지식인과 종교인들조차 ‘홍해가 갈라지듯’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들의 현란한 말솜씨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사기꾼 재단사를 뺨칠 정도로 탁월하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시대라고 하지만,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가 없는 개인은 한없이 초라하다. 그런 이들에게 자유는 오히려 더 두려움을 준다. 10여년 전 ‘현수막에 인쇄된 김정일 수령님의 얼굴이 비를 맞는다’고 버스를 세우고 달려갔던 북한 미녀 응원단이 떠오른다. 한 여인이 달려가자, 버스에 탄 모든 이들이 현수막을 향해 달려갔다. TV를 통해 보면서 북한의 독재체제가 만든 코미디라고 씁쓸해 했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형태만 조금 다를 뿐 우리도 그런 코미디를 만들고 있지 않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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