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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절 ... 대학생활부터 국정원 취업까지 그리고 10·26사태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 <어사>의 저자 서홍덕 님(2부)
기사입력  2018/08/28 [16:10] 최종편집   

 

▲78년 저자 결혼식 장면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 <어사>의 저자 서홍덕 님(2)

격변의 시절 ... 대학생활부터 국정원 취업까지 그리고 10·26사태

 

혼란의 시절에 나는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법정대학은 지금과는 달리 선임과가 경제학과로 정원 10, 법학과 정원 20, 정치외교학과 정원 10명 총 4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참 단촐했다. 학교에는 시계 꽃밭이 있었고 본관 뒤에는 복숭아밭이 있었으며 문리대 앞에는 논이 있어 벼를 심고 있었다.

1964년도에 한일국교정상화협상이 있었고 각 대학교에서는 한일협상 및 교련 반대 데모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정치외교학과 수업에 들어가니 10명의 입학생 중 가정형편 등의 어려움으로 서너 명이 나오지 않으니 큰 교실에 재학생과 복학생을 포함해서 7~8명 정도가 수업을 들었다.

학교 담장 옆에는 노랑집이라는 선술집이 있어 우리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아침부터 거기로 출근해서 시국을 논하며 수업을 빼먹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중 데모는 점점 격화되고 정외과 선배들이 데모 주동혐의로 강제 징집되기도 하고 투옥되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나의 성적은 초라했고 다음해에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나는 1971827일 대구 성서에 있는 육군 제 50사단에 입대하여 1974620일에 전역하였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 아버님 세대들은 자식이 군에 입대하는 것은 크나큰 고생이고 자식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으므로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군에 가는 아들을 격려하였는데 나도 이틀이나 잔치를 하고 군에 입대하였다. 입대하는 날에는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과 함께 50사단 정문에 도착했는데 헌병들이 신병 집합 하더니 부모,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기합을 주었다.

1968121일에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하여 청와대 인근 세검정까지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일병 김신조 사건)가 일어났다. 또한 19681030일부터 111일까지 3일간에 걸쳐 북한 측 무장공비 120명이 울진·삼척 연안에 침투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삼척에 동해안경비사령부가 창설 되었고 대전통신학교 교관들은 동해안 경비사령부의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를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군에서 많은 경험을 하였으며 그 후 197462032개월여에 걸친 군 생활을 처음 입대했던 대구의 50사단으로 돌아와서 전역을 하였다.

19746월에 전역을 했으니 9월에 복학할 때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에 고된 농사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잠시 고향으로 내려와 오랜만에 농사일을 도왔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농사는 우리가 잘 지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빨리 복학해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면서 늘 아낌없는 신뢰와 지지를 해 주셨다.

복학을 해 오랜만에 돌아온 모교(경북대학교)는 그 사이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같이 공부해야 할 동료들이 동생처럼 보였고 그들은 나를 복학생 형님으로 대접했지만 그저 앞날이 너무도 막막하고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것이 나의 생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자신을 직시하게 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일반기업체에 들어가 돈에 굽신거리는 것 보다는 내 나라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결심을 굳힌 뒤에 절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내심 하숙비 등이 들어가는 관계로 가난한 살림에 지원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고 결심한 대로 열심히 공부해 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서 사회와 격리된 공간인 사찰로 들어가 공부에만 전념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었다. 청룡사에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어놓은 별채가 있었고 거기에는 5개의 방이 있었다. 별채에는 서울대를 졸업한 학생도 있었다. 두 번째로 옮긴 곳은 달성군 현풍면 비슬산에 자리 잡은 유가사였다. 아버님께서는 자전거에 이불과 책을 잔뜩 싣고 끌고 가셨고 나는 그 뒤를 따라 한 시간여에 걸쳐 비슬산을 올라갔다. 나는 묵묵히 뒤를 따라 걸으며 내가 이렇게 아버님을 고생시켜드리고 있는데 정말 고시에 합격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유가사에서도 꽤 오래 머물다 다시 칠곡, 경산 등에 있는 사찰로 떠돌아다니면서 행정고시를 준비한 끝에 1차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고 덕분에 대학교 수업료를 면제 받기도 했지만 2차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1차에 붙으면 이듬해에는 1차는 패스하고 2차를 한 번 더 보게 해 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듬해 2차에 또 떨어지고 말았다.

복학 후 치열하게 고시공부에 전념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가정형편상 더 이상 가능성이 희박한 고시에 매달릴 수도 없었다. 이에 취업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중앙정보부(, 국가정보원) 직원 채용시험에 응시하였다.

국제적으로 불어온 오일쇼크 등의 여파로 극심한 불경기인 70년대 후반, 일반 사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공채시험에 몰렸다. 하지만 그동안 노력했던 결과인지 몰라도 나는 무난히 합격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경북 시골에서 자라 대구만 해도 엄청나게 큰 도시라 생각했던 내가 어느덧 국가 공무원이 되어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부모님께서도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부산 해운대 결혼식 장면


1978226일 지금의 아내인 강현숙과 결혼을 하였다. 중앙정보부 직원들은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우선 결혼대상자의 신원을 조회하여 좌익경험이나 불온한 사상이 없는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신원조회에 통과된 사람만이 결혼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신혼생활은 짜릿하고 행복했으며 아내는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사람이었으며 동대문 운동장 근처에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는 매일 아침마다 30분 이상 걸리는 내 직장까지 배웅을 해 주었고 또 저녁에도 함께 산책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말 그대로 허니문을 보내던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19791026일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궁정동 청와대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방아쇠를 당긴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중정부장인 김재규가 체포되면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군이 중앙정보부에 진주하였다. 우리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모두 죄인이 되어 버렸고 중앙정보부의 위상은 땅에 떨어져 더 이상 발붙일 곳도 없어 보였다.

나는 고시가 안 된 마당에 최고의 권력기관에서 일하면서 나름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젠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곳에서 떨어진 새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권력기관에서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진 신세가 된 변화의 길목에서 나는 가야 할 곳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정보부에 상응하는 다음의 권력기관은 감사원이었다. 이에 나는 감사원으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열정을 불태웠다. <출처: 어사, 서홍덕 저, 희망사업단, 서울 2018>

다음 호에 계속

 
재창간 3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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