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자서전: <금진강의 꿈> 저자 이근철 님(2부)
대우, 한국기원 그리고 산(山) - 이근철님 2부(성현동)
군에 입대하면서 1.21 사태(김신조 무장공비 사건)가 벌어지고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가 출현하는 등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는 안보사항이 극도로 불안했던 시기였다. 저자는 이 시기에 군생활을 하였다. 삼척에 동해안 경비사령부 신설 업무에 자원하여 삼척에서 만기제대를 한다. 전역 후 저자는 복학하여 학업과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며 대학생활을 마친다. 졸업 후 극동쉘석유에 취업하여 회사를 다니며 74년 현재의 아내를 만나 76년에 결혼을 한다. 이후 저자는 대우실업을 거쳐 한국기계(대우 중공업)에서 일하게 된다. 면접 때 김우중 회장과의 일화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최종 면접장인 서울역 앞 교통센터 빌딩(얼마 후 대우가 인수해 대우빌딩으로 개명 함) 내의 한 곳에 들어가니 또 김우중 회장이 여러 임원들과 함께 앉아서 피면접자들을 심사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김 회장이 “이번이 몇 번째야?” 묻는다. 실은 1975년에도 응시했었으나 떨어진 일이 있어 “네. 세 번 째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한참 쳐다보더니 “배짱이 좋구만. 이젠 확실히 일 할 수 있는 거야?” 재차 묻는다. “이제는 결혼도 하고 해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어떤 곳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니 “좋아. 이번에 인수한 한국기계(얼마 후 대우중공업으로 개명)에 가서 일해 봐!” 큰 목소리의 승낙이 떨어져 ‘대우 맨’이 되었다.
(금진강의 꿈. 2014. 서울. 희망사업단,34쪽)
대우에 있으면서 대리, 과장으로 승진하며 수출현장에서 근무도 하고 다양한 업무를 하던 중 12.12 사태가 나고 신군부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회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반발하여 잠시 퇴사를 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복직하여 일하게 된다. 당시 중동에서 일어난 건설 붐이 대우중공업의 중장비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회장 지시로 아마바둑으로 기력이 있었던 저자를 ‘한국기원’ 사무국장으로 파견하여 한국기원 회장인 김우중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당시 저자는 아마3단의 유단자였다.
당시 이현재 비서실장(후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 경제부총리 역임)을 만났더니 바둑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묻는다. 1급(아마추어 3단)이라고 했더니김우중 회장이 정부에 의해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총재를 맡게 되었는데 그 쪽에 파견 나가 실무를 맡는 책임자인 사무국장이 필요한데 의향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동안 바둑을 취미로 배워왔는데 바둑행정과 사회단체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수락했다. 그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에게서 정치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 각종 운동단체, 사회단체를 정비하고 일부는 프로화 하여 출범시키던 때였다...
김 회장은 골프 등 운동을 하지 않아서 유일한 취미인 바둑이 5급 정도 실력이라고 했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정부시책에 협조하여 총재를 맡고 대표자격인 이사장에는 대우그룹의 고문으로 있던 서정각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나는 대우그룹에 적을 그냥 두고 관철동에 있는 ‘한국기원’ 사무실에서 사무국장으로서의 일에 전념하게 된 것이었다. 김 회장은 인사차 뵈었더니 “응. 나가서 일 잘해!” 짧게 한마디였다.
(금진강의 꿈. 2014. 서울. 희망사업단,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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