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범한 시민이 기대하는 새해
17세기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나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 쌍둥이의 하나는 나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자유가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고, 약자는 강자의 힘과 폭력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생명·재산·행복 중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국가를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경제적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주고 있는가? 지금처럼,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살얼음판 같은 현실에서 국민은 홉스가 말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우리 사회의 누구도 생존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가장 안전하다는 비행기조차 사고로 수백 명이 사망하는 현실에서, 누가 안전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술집에서 친구와 정치 이야기를 했다가, 어느새 논쟁으로 번져서 평화가 깨진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 수 없고,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식과 평화가 어디 있는가? 지금 우리 중, 홉스가 말한 ‘공포의 쌍생아’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 “나는 두렵지 않으며, 억울하지 않고 분노도 없다”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치사회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정치는 국민에게 질서가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법과 도덕이 지켜지며 무질서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줘야 한다. 21세기를 살면서, 17세기 정치철학자 홉스를 들먹이는 것이 넌센스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환경이, 17세기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된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안식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의 기대는 의외로 소박하다. 이러한 정치가 복원하기 위해, 여당과 야당 그리고 시민단체는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