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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균형이 깨진, 국가 간의 조약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기사입력  2024/09/03 [14:36] 최종편집   

  ©본지 권영출 회장

 

(권영출의 칼럼)

힘의 균형이 깨진, 국가 간의 조약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스페인축구 대표 팀에는 ‘무적함대’라는 별칭이 붙곤 한다. 과거 16세기 스페인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누비던 막강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전성기에는 남미대륙, 필리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방대한 영토를 식민지화했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누렸다. 현재도 스페인어는 21개국의 공식 언어이며, 5억 7천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잘나가던 스페인도 1588년 칼레해전에서 변방의 영국에게 패배하면서, 무적함대라는 이름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이후 스페인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으며, 2024년 기준 국가별 1인당 명목 GDP에서 한국보다 순위가 밀리고 있다. 이것이 냉정한 국제사회의 현주소이다.

 

∎국가 간의 조약! 신뢰해도 될까?

 

19세기 나폴레옹이 유럽의 패자로 떠오르면서, 영국까지 삼키고 싶었던 그의 꿈은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좌절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모든 유럽 국가들에게 영국과의 교역 금지령을 내린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와인과 곡물을 영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워서, 금지령을 어기고 무역을 하게 된다. 이에 나폴레옹은 포르투갈 정벌을 결정한다.

 

그러나 포루투갈로 가려면 스페인을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4세에게 ‘길을 내어 달라’는 요구를 한다. 이미 국력이 형편없이 나약해진 스페인으로서는 나폴레옹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허락하는 대신 “스페인을 지나가기만 해야 한다.”라는 약속을 전제로 조약을 체결했다. 마치,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조선은 길을 터주라”고 했던 요구와 판박이가 아닌가?

 

그 이후 조선이 겪어야 했던 일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힘의 균형이 깨이진 국가 간에 약속은 아무리 진한 도장을 찍었다 해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된다. 나폴레옹 역시 스페인을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스페인 전체를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수치스럽게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 브라질로 망명했다. 그러자 종주국이었던 스페인이 프랑스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본, 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독립전쟁을 일으켜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더 유명한 사례는 영국과 독일의 뮌헨협정이다. 1938년 체코를 양도해 주면 더 이상 침략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약속을 믿고 체결한 협정이다. 영국에 돌아온 체임벌린 수상은 국민들을 향해 “이제 전쟁은 없다.”라고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 후 1년도 안 돼, 히틀러는 유럽 전체를 향한 침략전쟁을 벌였고, 런던 상공에 V2 로켓이 떨어져서 국민들은 끔찍한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북한과의 평화조약! 신뢰할 수 있을까?

 

북한은 정권을 수립한 이래,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겠다는 의도를 철회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비대칭 무기의 중심인 핵을 보유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북한 입장에서는 핵은 그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는 최고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경제력 최하위 국가인 그들이 힘의 균형추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이것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었던 정치인들의 안이한 태도가 한심하다. 평범한 일반인들조차,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공감하는데, 협약이나 서명에 매달리는 진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더 이상을 전쟁이 없을 것이라 믿고, 군수산업을 해체하거나 축소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군수산업과 무기 개발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평화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뿐 아니라, 전쟁을 원하는 멍청한 바보는 없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고. 평화를 외치다가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국가들이 얼마나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벌이는 비이성적인 통치 행위를 보면서도, 촘촘한 조약이나 협약으로 억제하면 통제될 것이라 믿는 자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매국노일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가장 책임을 져야 할, 지도부였던 대신들과 선조 임금은 중국으로 도망갈 궁리만 했다. 스페인의 왕실 역시, 나폴레옹이 침략하자 브라질로 망명했다. 만에 하나 북한이 침략한다면, 북한과의 평화조약을 최선인 냥 떠벌이며 국민에게 선전했던 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상상해 보라. 전쟁이 나면, 권력 있고 돈 있는 자들은 어디든 도망칠 곳이 있지만, 가장 큰 고통과 비참한 공포를 느껴야 할 대상은 힘없는 국민들이다. K방위산업의 능력과 위상이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재평가되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지만, 전쟁을 대비했던 우리의 선택이 올바르고 지혜로웠다는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힘의 균형이 깨어진 평화조약!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국가 간의 협약이나 조약은 국가 당사자 간에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휴지 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평화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심리 포퓰리즘을 멈춰야 한다. 지금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건만, 여전히 김정은을 찬양하는 자들이 버젓이 활개 치는 세상이다. 결국 북한 추종자들과 거짓된 평화를 정치도구로 이용하면, 먹힌다고 믿는 자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대통령 시절, 민주평통위원 자격으로 연탄을 싣고 개성공단을 통과해 본 경험이 있다. 

 

개성공단 울타리를 넘어서, 겨우 10여 분을 달리자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 한국의 농촌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울타리에 널려 있던 빨래다. 처음엔 ‘방바닥을 닦는 걸레가 왜 저렇게 많이 널려있지?’라고 생각했는데, 버스의 속도가 늦춰지면서 자세히 보니, 걸레가 아니라 옷을 빨아서 걸어 놓은 것이었다. 도무지 옷의 형태라고 할 수 없어서 내 눈에 걸레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도 평양 다음으로 큰 도시라는 개성이 이 모양인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연탄을 직접 배달한다는 명목으로 개성의 시골 모습을 맨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평통위원 40여명이 모두 목격한 것이니, 과장이나 거짓이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경제와 국방에서 뒤처지는 순간, 전랑외교의 먹잇감이 될 것이고 조공(朝貢)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평화 협약이라는 문서에 기대지 말고, 경제력과 국방력을 튼실하게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굴종의 외교 조약이 아니라, 대등한 외교력을 가질 때까지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간질을 멈춰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누가 진정한 애국자이며, 백년대계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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