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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와 종교와 철학이 필요한 이유
(권영출 칼럼)
기사입력  2024/08/20 [20:02] 최종편집   

  권영출 본지 회장


(권영출 칼럼)

우리 시대와 종교와 철학이 필요한 이유

 

2011년 KBS에서 ‘대장경 1천년’을 기념하여 ‘다르마 4부작’을 방송한 적이 있다. 첫 회의 제목이 ‘붓다의 유언’이었고, 죽음을 목전에 둔 붓다는 아난다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하려라. 아난자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사라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개인적으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 구절이 낭송될 때.....눈에서 눈물이 맺히면서, 깊은 감동과 울림이 온 몸을 감싸는 경험을 했다. 경전(輕典)의 위대함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이 어떤 환경, 문화, 전통과 철학의 두터운 방패로 무장했더라도, 무력화시키는 힘에 있다. 마치 엄동설한의 눈보라 속에서 비치는 한줄기 따스한 빛과 같아서, 어떤 강력한 냉기(冷氣)도 그 따스한 빛 앞에 서면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신문과 방송을 보기가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이런 경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추하고 상스럽고, 이기심과 질투와 저주로 가득 찬 독설을 쏟아내는 모습이 지옥이고 아귀(餓鬼)가 아니면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늘 굶주린 귀신을 아귀(餓鬼)라고 하는데, ‘각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서로 헐뜯고 기를 쓰며 다투는 일’을 아귀다툼이라고 부른다.

 

∎종교가 빛을 잃으면, 그 세상은 곧 지옥이다.

 

중세 유럽은 종교의 전성기였지만, 다른 한편 암흑의 시대라고도 한다. 종교권력자들이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권력과 돈에 탐닉할 때, 서민들의 삶은 지옥으로 바뀌게 된다.

 

 

1471년 취임한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상속법을 개정하여, 성직자의 재산을 가족에게 물려줄 수 있게 했다. 그뿐 아니라 교황령 내에 매춘업을 허가하고, 세금을 걷기도 했다. 그 뒤를 이은 인노첸시오 8세는 중세 유럽의 메디치 가문과 결탁하여 그 후손들을 추기경에 기용했고, 마녀사냥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학살했다. '탐욕의 끝판왕'으로 불린 214대 교황 알렉산드르 6세는 뇌물로 추기경들을 매수하여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사생활이 난잡하여 16명이나 되는 사생아와 수많은 정부(情婦)들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종교가 빛을 잃고 세속의 권력과 결탁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이런 현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의 종교인들 중에 국민의 가슴에 감동을 주며, 스스로를 태워서 빛을 비추는 분이 몇이나 되는가? 아귀다툼하는 정치인들의 하수인이 되거나 동조자가 되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서로 저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종교인들에 의해 종교는 빛을 잃었고, 세상은 아귀(餓鬼)들이 판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철학이 없는 대학은 세상을 더욱 메마른 사막으로 만든다.

 

‘철학의 힘’이란 책을 쓰신 김형석 교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불평등한 세상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화살처럼 날아가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 속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고민의 과정’이 철학이라고 했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늘 목마르고 불행하다고 호소한다. 툭하면 ‘헬 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정작 조선 500년 동안 평범한 서민은 하루 한 끼 혹은 두 끼를 먹으면 감사하게 생각했으며, 평균 수명도 35세에 불과했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회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처럼 살벌한 곳으로 변했고, 현실보다 SND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고교졸업생의 72.8%가 대학에 진학하는 OECD 1위의 국가지만, 철학을 가진 지성인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 시대의 등불이 되어야 할 종교인들과 대학교수들조차 앞다투어 맘모니즘(物神主義)에 빠져드는데, 어디에서 희망을 찾겠는가?

 

 

병이 생기면,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여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하는 의사가 존경받는 위대한 의사다. 우리가 앓고 있는 이런 질병은 우리 사회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다. 중세 유럽 종교의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처럼 정신과 철학의 개혁을 주도하는 힘이 화산처럼 분화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더위를 피해, 계곡과 산으로 가는 대신 템플스테이를 통해 위대한 경전을 읽고 묵상하면서, 낡은 생각과 가치관을 씻어내는 정화(淨化)를 체험해 볼 것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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