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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을 행복하게 사는 길
기사입력  2023/01/04 [23:30] 최종편집   

(사설)

2023년을 행복하게 사는 길

 

피터 브라운(Peter Brown)의 책 <몸과 사회:The Body and Society> (2008)에 의하면, 고대 로마제국의 북아프리카 같은 경우 무덤에 묻힌 여자들의 95%가 23세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라고 했으며, 14세기 영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31.3세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서 ‘현생’보다는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내세’가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노예나 농노와 같은 계층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내세를 약속하는 기독교는 유일한 위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오래 살고 또한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에 내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큰 성당건물은 관광지로 바뀌었고, 무신론자의 숫자도 급속히 늘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2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500여 명의 개신교인 응답자 가운데 42.6%가 온라인이나 가정예배를 드리고 예배당을 찾지 않게 됐다고 답했다. 그리고 개신교의 경우 60대 이상의 숫자에 비해 10대는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모두가 최대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아주 작은 고통조차 버겁고, 힘들어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리고 영화와 문학작품 속에 존재하는 로멘틱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처럼, 그런 영원한 행복이 존재할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있다. 아쉽게도 행복은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언한다.

 

혹독한 가난과 질병으로 늘 죽음을 곁에 두었던 과거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조차 갖지 못했다. 그들과 달리 우리는 사회적 풍요와 의학기술의 축복 속에 장수하는 시대를 산다. 그런데 장수(長壽)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하면서, 고통스런 삶을 호소하는 숫자가 커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철학자들은 조언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삶의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에서 신비로움을 찾는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2023년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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