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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연 논란에 관한 생각
(최기만의 시사칼럼)
기사입력  2021/12/08 [20:07] 최종편집   

 

▲ 최기만 본지 객원논설위원

 

(최기만의 시사칼럼)

조동연 논란에 관한 생각

 

유튜브에는 가로세로연구소라는 방송채널이 있다고 한다. 줄여서 가세연이다. ‘있다고 한다는 표현은 그런 방송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접속해 보거나 아예 그 근처를 지나가 본 적도 없어서 하는 말이다.

 

 

그 채널의 특징은 수많은 도덕성 논란에 따른 고소 공방을 불러일으키며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말하자면 가세연이 보기에 만만한 먹잇감인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개인들의 사생활을 성역 없이 까발리며 인간의 본질을 깊이 통찰케 하는 독서나 지적 수준 향상은 아무 관심도 없이, 이러한 가십꺼리에만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한 해 7~8억에 달하는 방송수입과 실시간 후원금 등을 합쳐 엄청난 추가수입을 올리고 있다.

 

 

특히 법원이 고발사건에 따라 출석명령에 불응하는 가세연의 중심인물인 강용석 체포영장이라도 발부하는 날이면 고의 버티기에 들어가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를 연기함으로써 실시간 중계로 얻는 후원금은 수직으로 치솟을 정도니 이들의 방송 동력인 콘텐츠를 국민에게 총체적 이익이 되는 쪽으로 바꾸길 기대하는 마음은 원천적으로 무망한 일이다.

 

그들의 방송이익을 위해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이 앞으로도 수없이 희생될 것이라는 예측은 분노를 넘어 차라리 서글픔이다. 국민 각자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하고 이는 헌법으로도 보장된 권리이나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흉측한 언론 괴물들 앞에서 헌법의 보호막은 아예 보이지 않거나, 아니면 너무 늦은 뒤에야 그림자만 어른거리는 게 우리가 경험하는 국가 헌법의 현주소다.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헌법

 

여야를 막론하고 최고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유혹받기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가 그 주변 인물의 도덕성을 성역 없이 공격함으로써 경쟁후보에게까지 오물을 묻게 만들어 바람 따라 널뛰는 현재의 지지도를 최대한 끌어 내리는 일이다. 주변인들을 보면 당사자를 알 수 있다는 유유상종 접근법으로 몰아가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는 일에 도덕성이나 개인의 인권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는 극한 인격파괴의 섬뜩한 야만시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승자독식을 위한 여야의 무한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대선정국에서 최근 민주당 대선캠프가 조동연 서경대 교수를 외부인사로 영입하자 유튜브 가세연이 조동연 교수의 과거 사생활을 무차별 폭로하며 그 가족들의 얼굴까지 공개해 개인 사생활의 무분별한 침해에 대한 찬반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조동연 교수가 야당인 국민의힘 대선캠프로 들어갔으면 가세연의 공격으로 그렇게까지 만신창이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그저 개인적 추측으로만 그칠 따름이다.

 

이러한 과거사 논란으로 며칠 만에 민주당 대선캠프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조동연 교수의 혼외자식 논란은 여전히 유교문화가 팽배한 우리사회에서 일면 자극적인 일일 수 있다. 게다가 여전히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기간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더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여성도 원하지 않는 성폭력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고, 또한 그 기간이 혼인관계가 유지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피치 못할 개인사 안으로만 누르고 살아야 했던 개인의 상처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도려내 난도질을 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은 18세기 프랑스가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이라는 격변의 혁명시대에 서로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동원했던 공개 단두대 처형과 하등 다르지 않은 인민재판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명시대를 자처하는 21세기의 백주에 한 여성이 항변할 여지도 없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옷을 걸친 채 아무 죄 없는 자식들과 몸이 한데 묶인 목을 향해 칼날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외도로 혼외자를 낳은 불륜녀가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였고, 태중의 생명도 종교적 신념으로 낳아 키운 모정과 생명존중의 모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다. 그런데 그것이 동정받을 미담이 되기는커녕 사회적 지탄받을 일이라는 사실에 나는 반대한다. 더구나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을 일제히 비판하면서 피해여성의 2차 피해를 막는다며 용감하게 나섰던 그 노랑머리 변호사와 여성단체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를 나는 묻고 싶다. 피해여성을 위로하며 가해남성을 강도 높게 비난하던 그녀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던 젠더감성의 방패는 지금 어느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지 더 늦기 전에 꺼내 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주홍글씨 새기는 무자비한 사회

 

나는 하늘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가, 대체 언제부터 이토록 세렝게티에 모여 사는 무자비한 맹수들보다 더 잔인해진 것일까? 맹수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을 하지 않건만 사냥의 시간이 따로 없는 사람들은 재미삼아 사냥을 즐긴다. 우리의 이성과 감성은 어떤 존재들에게 빼앗긴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헌납한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어쩌면 조동연 교수의 2차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개인의 상처를 동정한다는 미명으로 나 역시 어서 아물기 시작해야 할 그녀의 상처를 다시 꺼내들고 있더라는 사실에 그녀에게 깊이 사과한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은 돌을 들어 그녀를 쳐도 좋다고 한 예수의 말에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씩 손에 든 돌을 내려놓고 모두 돌아갔다. 이른바 도도맘과의 불륜사건이 드러나 실형을 살다 나온 강용석 부류의 모순적 선동질이 정의롭다고 생각해 그녀에게 부도덕의 죄를 씌워 심판하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돌을 들어 조동연에게 던져라. 그렇지 않은 죄인이 분노의 돌을 던진다면 그 돌은 반드시 던진 이와 자식들의 머리를 향해 되돌아오는 것이 정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지금 그 손에 들고 있는 심판의 돌을 내려놓고 그녀를 둘러쌓아 방패를 만든 다음 외쳐라. 무죄한 그녀를 단죄했던 나를 향해 돌을 던지라고. 그것이 사회와 사람에게 필요한 진정한 연민이자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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