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저널

칼럼   특별연재(지구온난화)   환경   선거일기   의학칼럼   기고   음악칼럼   산행기행   영화칼럼   유종필의관악소리   교육특별연재   신년사
호별보기 로그인 회원가입
컬럼
칼럼
특별연재(지구온난화)
환경
선거일기
의학칼럼
기고
음악칼럼
산행기행
영화칼럼
유종필의관악소리
교육특별연재
신년사
개인정보취급방침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컬럼 > 칼럼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세계란 무엇인가?
(안영혁의 힐링칼럼)
기사입력  2021/09/16 [18:22] 최종편집   

 

▲ 안영혁 목사

 

(안영혁의 힐링칼럼)

세계란 무엇인가?

 

최근 필자는 한 신학대학원의 또 한 연구소에서 기획한 신학과 기독교교육 연구자들을 위한 철학강좌에서 12시간에 걸친 강의를 한 바 있다. 그 기초는 젊은 시절 철학과 학부 교육이었고, 많은 내용은 그간의 공부와 삶을 버무린 것이었다.

 

이 강좌를 진행하면서 강사로서 새롭게 깨달았던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강의를 위해서 다시 더듬어본 철학은 아직도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오늘의 철학이 대략 세 가지 방향에서 이에 대한 답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첫째의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서 특히 교육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했던 이야기가 있다.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 철학적 질문을 한다는 것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만 2세 정도에서 세계의 모든 존재가 안개처럼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형체 그대로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을 교육학에서는 대상영속성이라 부른다. 4세가 될 때쯤이면 자신의 감각적 경험을 철저히 신뢰하게 된다. 자신의 감각적 인식에 대한 굳은 신뢰를 갖는 것인데 즉 감각적 세계관의 확신을 갖는 것이다. 미운 4세라는 말은 이런 철학적 배경을 갖고 있다.

 

6세를 넘어 아동기가 되면 세계에 대한 구체적 경험을 개념과 연결시키는 능력이 작동하는데, 말하자면 세계가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세계를 주유하는 순례자가 된다. 그리고 공자가 지학이라 부른 15세 전후가 되면 세계에 대하여 감각의 문을 닫고도 정신세계의 작동만으로도 세계 이해를 발전시켜갈 수 있다. 이런 성장 가운데 세계는 늘 책이자 선생이고, 아이는 학생인데, 그 궤적이 매우 철학적이다.

 

이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청년기에는 날카롭게 기성세대와 싸우고, 장년기에는 나름 통일된 세계를 만들다가, 훌륭히 노년을 맞으면 늘 세계 깊은 곳을 통찰하게 된다.

 

모든 철학 사조는 이런 인간 성장과 적응과 통찰에 근거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철학이란 이제까지의 시간적 공간적 유산과 다가올 미래의 빛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현대는 대략 3가지의 통찰의 방향을 얻었다.

 

근대에 나온 합리론과 경험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합리론은 보이는 세계를 이성으로 꿰뚫어 보고 난 후 얻는 관념을 세계로 보는 것이고, 경험론은 될 수 있으면 관념 이전의 상식적 세계 그대로를 보려고 한다. 그래서 저 합리론의 관념적 사고는 현대에는 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그냥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서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다. 요즘은 사실 경험론을 잇는 철학의 발전이 눈부시다.

 

경험론은 확실히 관찰할 수 있는 것의 핵이 되는 것을 뽑아내려고 노력해 온 셈인데, 결국은 수학에서 그 길을 찾았고, 수학과 논리학을 결합하는 노력을 한 결과 인간 사고의 기본적 원리를 수식으로 표현해내는데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

 

이 경험론의 진전은 끝내는 컴퓨터를 만드는 기본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원리도 되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모든 사고는 아니고 바로 이 경험적 사고, 그 중에서도 수리논리적 사고를 기본 모델로 한다. 그리고는 인간의 성장과 학습까지도 일종의 알고리듬을 만들어서 폭발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이라 하면 이렇게 현상학과 경험론의 후신들로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프랑스 철학에 주로 나타나는 구조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구조주의는 경험론적 실재나 관념으로 표현되는 본질 두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세계의 실상은 아니라고 본다.

 

구조주의는 세계의 이해를 인간 문화의 이해로 보며, 인간의 수많은 문화 가운데는 그 나름의 구조가 다 존재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정계에는 정계의 구조가 있는 것이지, 헤겔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가 세계를 아우르면서 정점에 있고 법이 모든 개념의 제왕이 되는 그런 것이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도 말의 뜻이 먼저 있었다기보다는 두루 문화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고 나서야 그 나름의 뜻이 굳어지게 되었다고 본다.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거의 서태지에게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구조와 우리나라의 포스트모더니즘 구조는 다른 것이다.

 

요즘은 우리가 우리 사는 것 자체를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니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프랑스 구조주의와 그 이후 사조들이 철학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튼 저 세 가지 사조는 그 각각이 존재가 견고하다.

 

그래서 이 3가지의 세계 이해를 함께 가지고 세상을 보라고 독자들에게 권한다. 상식적 감각적 세계도 있고, 관념이 되어서야 모양을 나타내는 본질도 있고, 어떻게든 만들어지는 여러 문화의 구조도 있다. 오늘의 세계는 그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언제나 소피스트들이다. 정치를 하나의 구조로만 인정하고 자신이 깨달은 대로 나름의 세계를 사는 것이 시끄러운 대선정국을 넘어가는 지혜이다.

 

안영혁(예본교회 목사, 총신대학교 교수)

재창간 391호

ⓒ 관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미투데이 미투데이 페이스북 페이스북 요즘 요즘 공감 공감 카카오톡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주간베스트 TOP10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44길 35 대표전화 : 02-889-4404ㅣ 팩스 : 02-889-5614
Copyright ⓒ 2013 관악저널.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linuxwave.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