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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얻은 아주 작은 일 큰 선물
독자기고-최종무님의 수필
기사입력  2021/04/08 [14:44] 최종편집   

 

▲최종무 저자

 

독자기고-최종무님의 수필

노년에 얻은 아주 작은 일 큰 선물

 

나는 최근에 아주 작은 일로 큰 선물은 받았다. 선물은 군자란(君子蘭)의 진분홍색 꽃송이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추운 날 마을 앞산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데 아파트 앞 화단에 버려 진듯한 화분 하나가 보여서 가까이 가보니 군자란이 심겨진 화분이었는데 영하의 날씨에 잎이 1/3쯤 얼어서 동사 직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경비하시는 분께 물어봤더니 3일 전에 누군가 버렸는데 이대로면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식물이라도 생명이 있고 한때는 집안에서 곱게 키워온 화초를 하필 이 추운 겨울에 버려서 얼어 죽게 하나’, ‘이 겨울이 지나면 곧 따뜻한 봄날인데 그때 아파트 화단에라도 심어줄 것이지’, 누구인지 모르지만 괜히 원망스러웠다.

 

얼어버린 잎은 꺾여서 고개를 숙였고 살아 있는 잎은 살려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과연 살아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 혼자의 공간에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얼어 죽은 잎은 잘라내고 담요로 화분을 감싸주고 물도 주며 보살폈다. 작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얼마 되지 않아 생기를 되찾으며 잘라낸 잎에서 새잎이 올라와 이제는 제법 화분의 모습이 갖춰졌다.

 

군자란 화분

 

 

며칠 전부터 꽃대 3개에서 20여 송이의 진분홍색 꽃이 이쁘게 피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식물도 극한상황에서 작은 도움을 받으니 강인한 생명력과 자생력으로 살아나서 이렇게 붉은 꽃으로 보답하는 것 같아 대견하고 신기했다. 한편으론 고맙기까지 하고, 과분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적지 않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쇠도 담금질을 해야 강철이 되고 나무도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야 새잎이 돋아나고 나 역시 군 생활과 회사생활 통해 극기훈련을 많이 겪었다. 훈련받을 당시는 힘든 고통이지만 받고 난 후는 소심함이 담대(膽大)해지며 적극적인 도전정신으로 변했던 기억이 난다. 군자란 또한 방 안에서만 자라다 극한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났으니 강인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남이 버린 것을 주워왔다고 핀잔을 주고, 또 평소에 내 방에는 잘 들어오지 않던 집사람도 꽃을 보고는 신기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꽃을 보러 와서는 "꽃이 이쁘게 피었네. 너는 주인을 잘 만났다 얘" 하며 잎을 닦아주곤 한다.

 

우리집에는 화초 가꾸기를 포기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여러 번 시도 했으나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화초는 아무나 가꾸는 게 아니고 복이 많고 후덕한 집이라야 잘 자란다"는 친구의 농담이 현실이었기에몇 년 전에 딸이 아버지 서실에 화분이 하나도 없네라며 화분 3개를 넣어주었는데 역시나 2개는 얼마 못 가 실패하고 지금까지 홀로 1개 남은 게 엽란(葉蘭)이다. 엽란은 관엽식물이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않는 것 같은데 군자란은 동사 직전에서 살아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쁜 꽃을 보게 되니 신기하고 대견하다.

 

혼자 외롭게 있던 엽란도 이제는 친구가 생겨서인지 생기가 돋아나서 잎이 더 푸르게 보이는 것 같다. 보답 차원에서 4월에는 화분 2개에 분갈이를 배워서 해줘야겠다.

 

축녹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사슴을 쫓는 사냥꾼이 산의 경관을 볼 겨를이 없듯이 우리 세대는 대다수가 그랬으며 특히 흑수저 출신인 나로서는 옆과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먹고 살기 위해 사슴 꽁무니만 쫓아왔다.

 

 

어느덧 힘에 부쳐서 산마루턱에 걸터앉아 땀을 닦고 사방을 보니 청력은 떨어졌는데 젊을 때는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들리고, 시력은 떨어졌는데 산도 바위도 나무와 풀잎도 보이고, 작은 생명 하나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허전함에 서쪽을 보니 해는 석양으로 기울어지고 잡아 놓은 사슴도 없다.

 

 

며칠 전 친구가 카톡으로 "Time is gold", "석시여금(惜時如金) 시간은 황금과 같으니 아껴서 보람되게 쓰라" 등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글을 보내왔었다. 많이 들었으나 관심 밖으로 흘려듣다가 무슨 소리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자 그 귀중하다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얼마나 남지 않았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되었다고 답을 해준 생각이 난다.

 

그 귀중하다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지는 건 웬일인가. 하지만 욕심은 화를 부를 수도 있으니 차분하게 작은 일에서 작은 보람이라도 찾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젊을 때였으면 얼어 죽는 화분이 눈에 보이기나 했을까.

 

 

최종무(47년생, 관악산 휴먼시아아파트 거주)

재창간 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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