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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향기 같은 소중한 순간들> 저자 문금선 님(1부)
21세기 여성으로 살아간 20세기 여성
기사입력  2015/09/10 [13:18] 최종편집   

 

▲1968년 결혼식 장면


어르신 자서전: <들꽃향기 같은 소중한 순간들> 저자 문금선 님(1)

21세기 여성으로 살아간 20세기 여성

 

2015,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15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사회는 여성들이 일과 가정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그런데 지금부터 70여 년 전에 태어난 20세기를 살아온 여성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고 훌륭히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면 어떤 삶일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쉽지 않은 삶의 방식이라 여겨지겠지만 오늘을 사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하나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소개해 본다.

문금선님은 1940년대 중반 경남 남해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당시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딸들은 교육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다. 이에 저자도 8세에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1년 뒤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1년 늦게 들어갔지만 성적이나 생활면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다. 이후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했지만 당시 집안상황으로 보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저자는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했을까?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열망하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진학을 꿈꾸어 보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섬마을이었다. 깡촌 섬마을에서는 계집아이를 고등학교까지 보내지 않는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는 커녕 중학교만 나와도 학력이 높다고 자랑할 정도였기에 대부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자연스럽게 진학의 꿈을 포기했다. 만약 고등학교를 진학시키려는 집이 있더라도 있는 재산이라곤 논밭 밖에 없는 깡촌에서 이를 팔아 딸자식을 고등학교에 보낼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꿈이 있는 여학생은 포기하지 않았다.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고 석유를 배급받아 쓰던 때였기에, 아무리 열정이 있더라도 밤에 공부를 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학생은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쪼개어 모아 양초를 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양초와 책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가 한밤중에 양초를 켜고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새벽이 되면 몰래 집에 들어와 잠깐 눈을 붙이고 동이 트면 식구들과 함께 들에 나가서 일을 했다. 집안 식구 아무도 그 여학생이 매일 밤 그렇게 공부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루는 숙직을 하던 교장 선생님이 학교를 순찰하시다가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는 교실을 발견하고는 도깨비불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조용히 다가가 보니 한 여학생이 옆에 누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공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학생의 열의에 감탄한 교장선생님은 행여나 방해가 될까 조용히 뒤돌아 나왔다고 한다. (들꽃향기같은 소중한 순간들, 문금선, 희망사업단 서울 2014. 40)

 

▲고교시절 친구들과


결국 저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경남 남해의 시골 중학교에서 부산에서 손꼽히는 부산여고에 합격했다. 시골 동네에서는 마을의 경사라며 잔치까지 벌일 정도로 많은 축하를 받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배사고로 인해 모친이 돌아가시게 되면서 1학년 시절을 우울하게 보내게 된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친구의 권유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되어 삶에 활력을 찾게 된다.

 

방과 후에 학교도서관에 책가방을 두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친구들은 진학을 꿈꾸며 향학열을 불태우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나는 미래를 향한 꿈도 포기한 채 성적에 관심도 없이 1년여 기간 동안 학교 수업이 끝나면 종종걸음으로 가정교사를 기다리는 집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며 분주한 생활을 했다. 가르치는 열심이 있어서 아이의 성적이 오르고 반응이 좋았다. 그때 받은 월급이 800원이었다. 매월 학교에 내는 월사금이라는 것이 있던 시절이라 학교에 월사금 500원을 내고 남은 300원으로 용돈을 했는데 옷도 사 입을 만큼 넉넉했다. 게으름과 괴로운 마음도 조금 치유가 된 듯 친구들과 대화도 시작하고 생활에도 조금 변화가 있었다. (윗글 54)

 

이렇게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며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부친의 반대로 대학진학은 결국 하지 못하고 의류회사에 취직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였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서 다시 공부를 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교사직을 다시 구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중학교 교장선생님의 아들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사귀는 기간이 조금 지났을 때 그쪽 아버님이 영주동 큰오빠 집으로 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이에 우리는 어렵게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우리 가족과의 첫 만남의 자리였다. 식사를 마치신 아버님께서 언약의 징표라 하시며 금반지를 꺼내셨다. 졸지에 금반지를 끼게 되었다. 그 자리가 약혼식 자리가 된 셈이다. 그날이 1968110일이었으며 결혼하기 전에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다. 이후 1년여 쯤 사귀는 시간을 가졌고 교회에서 학습을 받고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할 수 있었다. 김계원의 장남 김현욱과 문주현의 차녀 문금선의 결혼을 약속함으로 두 집안은 사돈의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다.

 

19681012, 23세 철없던 나이에 결혼을 했다. 부산 제일예식장에서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하고, 부산 해운대관광호텔에서 신혼 밤을 보냈다. 신혼여행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구례 화엄사를 거쳐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남해 친정에 들러서 씨암탉 몇 마리를 축내고 돌아온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닐 때 남매 같다고, 닮았다는 말을 들은 것을 보면 천생연분이라 생각되었다. (윗글 61, 63)

 

결혼을 하고 2년 후에 큰 딸을 낳는다. 이후 작은딸과 아들을 낳아 3남매의 어머니로서 육아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고교시절부터 꿈꿔왔던 진학의 꿈은 사라지고 여성에서 어머니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정 속에서 깊은 숙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유명종/ 희망사업단 대표

 

2015년도 관악구 어르신 자서전 제작자를 모집합니다.(3명 내외)

문의 : 희망사업단 010-9204-7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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