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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ㅡ 세상의 끝
■이변의 산행기행
기사입력  2015/09/10 [13:03] 최종편집   

 

▲남한산성 서문이 얼마나 좁은 지 확인할 수 있도록 일행들이 서있는 장면 

 

이변의 산행기행

남한산성 세상의 끝

 

남한산성 서문에 가 보았다. 인조는 말 위에서 고개를 숙여 이 문으로 나갔다. 견마잡이와 같이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좁았다. 문을 나가자마자 급한 경사로가 산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환궁을 하려면 삼전도 수항단(항복을 받는 제단)에서 칸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어 삼배를 해야 한다. 전날 용골대는 말하였다. "남문은 정문이니, 죄인은 서문으로 나오라." 인조는 남문으로 들어가 47일간 버티다가 서문으로 나가 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문은 처연하다. 왕은 살기 위해 치욕을 감당하였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친명항청이다. 중국대륙은 이미 후금이 장악하여 명나라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있었다. 명나라를 도우러 일만 군사를 이끌고 간 김홍립은 전투 없이 후금에 투항했다. 왜 이러한 정세 하에서 친명항청을 하였는가?

 

인조는 광해를 폐하고 그와 동시에 광해의 등거리 외교노선과 대동법도 폐했다. 그 다음해부터 이년간 남한산성 축조에 전력을 다하였다. 청과의 전쟁을 각오한 것이리.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의 출렁이는 성벽 장면

 

남한산성은 천혜의 요새다. 산 위 분지와 가파른 산 사이에 성이 놓여있다. 청의 주력인 철갑은커녕 말조차도 기어오르지 못할 만큼 성 밖은 급경사다. 성벽은 안팎으로 출렁인다. 오목한 성벽 쪽으로 다가오는 적병은 볼록한 성안에서 쏘는 화살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명을 쳐야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칸은 대륙을 비우고 삼전도에서 한 달이 넘도록 죽치고 있어야했다. 지관들이 말하였듯이, 남한산성은 '군사 한 명이 적군 백 명을 물리칠 수 있는 요새'인 것이다.

 

청나라의 용골대가 얼어 있는 임진강을 이미 넘었을 때, 병조판서는 임금에게 임진강이 얼어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인조의 친위부대는 송파강을 넘기 전에 이미 흩어졌고, 왕의 견마잡이도 도주하였다.

 

전쟁론의 대가 손자와 클라우제비치는 전쟁은 정치의 집중된 표현이다. 전쟁은 승리를 확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 전쟁은 왕이 산성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패배한 전쟁이다. 왕이 갈 곳은 남한산성뿐이었다. 세상의 끝에 스스로 유배되어 싸우고자 함도 아니요, 항복하고자 함도 아니요, 다만 살고자 버텼을 뿐이다. 인조는 성 안에 5일치 식량만이 남아 있을 때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어찌 식량도 없는 곳으로 느닷없이 천도를 한단 말인가. 급박한 국제정세 하에서 친명항청을 취한다면, 청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일 터인데, 이토록 안일하게 무방비로 일관하였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산성 안에서 주전파와 주화파가 싸웠다. 자식이 두 아비를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주전파의 논리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니 항복하여 삶을 도모해야한다는 것이 주화파의 논리다. 명이 어찌 조선의 아비인가?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세상의 끝에서 정치인과 관료들은 다만 말들을 지어낼 뿐이었다. 주전파 몇 명은 임금의 항복을 애통해하며 자살 기도를 하였으나, 희한하게도 그 자살은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일행 중 한 분이 확인해 주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육백만 가량 되었는데 청으로 끌려간 사람들 숫자가 육십만이라고. 청이 조공을 요구했을 때 이를 들어주었다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그럴 수 없었다. 친명항청을 명분으로 광해를 폐한 쿠데타의 주역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으므로.

 

비극이란 정서적 슬픔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속에 관철되는 인과의 필연성이다. 인조반정은 남한산성의 오욕을 잉태하고 있던 것이다.

 

이치선/ 변호사

재창간 2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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