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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고속함정 국산화의 주역 .... 해군의 산 증인 최창락 님
어르신 자서전: <나의 뿌리와 내 삶의 흔적> 저자 최창락 님(2부)
기사입력  2015/06/23 [16:06] 최종편집   
▲1976년 고속함 건조 진수식 장면

어르신 자서전: <나의 뿌리와 내 삶의 흔적> 저자 최창락 님(2)

해군 고속함정 국산화의 주역 .... 해군의 산 증인 최창락 님

 

지난호에 이어 계속

해군사관학교를 마치고 함정근무를 시작한 저자는 함상생활의 애환과 여러 느낌을 일기로 표현하였다. 저자의 책에는 당시 기록한 일기가 생생한 필체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사진 참조)

1958년부터 1967년까지 10년간 함정생활을 마친 뒤에 드디어 해군 본부에서 근무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때 저자 가족은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생활이 시작된다. 당시 어려웠던 시절 정착기가 눈에 들어온다.

 

 

한편 근무지가 서울로 바뀌기 됨에 따라 와이프와 세 아들을 거느리고 상경하게 되는데 주택, 학교문제 등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해군본부와 멀지 않는 지역을 살펴보니까 동작구 상도동 부근에 해군본부 출근자가 많아 그곳에 셋방을 구하여 네 식구를 데리고 이사를 하였다. 그러나 셋방살이가 쉬운 게 아니었다...6개월을 버티고 살다가 낡은 한옥을 이백만원에 구입하여 이사를 하고, 그 후 약수터 넘어가는 언덕위에 한옥으로 다시 이사를 해서 점차 서울생활에 길들여져 갔다. 내 월급으로는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어려우니까 와이프가 장승백이 시장에서 어묵 튀김장사를 시작하게 되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골에 계시던 부모님도 상경하여 도와주셨고, 마산에서 처제도 올라와서 장사를 도와주었다. 인천 어시장에서 경매되는 생선을 구입해서 가게에서 손질하여 가공, 판매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71년부터 4년간 장사를 하면서 생활에 보탬은 되었지만 돈은 모우지 못하고,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고 힘들어서 장사를 접게 되고 사는 집도 노량진 아파트로 이사 하였다. (나의 뿌리와 내 삶의 흔적 2014. 서울. 희망사업단,73~74)

 

1972년에는 국방부로 옮겨 해군사업국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미군에서 제공한 무기를 재사용하던 수준을 넘어서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한 국산화 기술습득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해군 고속함정을 미국 조선소에서 건설하는 중대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1972년 국방부 방위산업국 해군사업담당으로 발령이 나서 전근하게 되었다. 모군(母軍)을 떠가 정부기관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기대에 찬 마음으로 갔다. 국군 창군이래 미국의 군사 원조에 힘입어 모든 무기와 장비를 미국 제품으로 유지해 왔는데 1970년대에 자주국방의 기치아래에서 무기의 국산화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었다.

이에 국방과학연구소를 만들고 국방부 내에 방위산업국이라는 조직을 새로 만들어 방위산업의 제1호 사업으로 M16소총 공장건설과 AN/PRC 77 무전기 국산화, 그리고 해군의 PGM 고속함 건조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해군의 고속정 확보는 시급한 과제로 당시 북괴 간첩선 침투가 극심하여 박정희 대통령께서 최우선 과제로 지시하셨다. (윗글,76~77)

 

저자는 75년부터 2년 반 동안 직접 미국 타코마 조선소로 현장 건조 감독관이라는 직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해외출장을 떠난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함정이 완성되어 진수식을 갖고 한국으로 출항하게 조치한 뒤에 귀국하게 된다. 이후 저자는 1977~1979년 해군교육단 참모장 및 기술학교 교수부장. 1979~1980년 해군본부 함정차감을 거쳐 진해정비창 부창장, 목포함대 정비창장을 거쳐 1982년 예비역 대령으로 전역하게 된다.

 

24년간의 해군생활을 마친 뒤 저자는 대우조선으로 입사하여 5년간 근무하게 된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기간을 대우에서 보낸 뒤에 약3년여의 기간을 야인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75년부터 시작한 골프가 인연이 되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한일스포츠 골프연습장 관리소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68세까지 근무한 저자는 만 40년간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진정한 은퇴를 하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후 종교의 가르침과 더불어 골프, 산행 등 취미생활과 여행으로 여유로운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저자는 80여년의 인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회한다.

 

▲전역사진

 

불교의 가르침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영양분이 풍부한 양식과 지혜를 듬뿍 공급해준 고마운 은인과 같은 존재이다. 아내와 결혼한지도 어언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빠듯한 봉급으로 일생을 살아 왔지만 짜임새 있는 알뜰한 살림살이로 애 셋을 모두 반듯하게 키워 주었고, 교육도 남부럽지 않게 외국 유학까지 시켜서 오늘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인생에서 음식의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취미생활은 비교적 일찍부터 관심과 노력으로 골프, 등산, 스포츠댄스, 가요 등은 노년기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아이템이다.

금강경 말미에 이르기를 이 세상의 모든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마치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아침이슬 같고, 번갯불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세상을 바라볼지니라.”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인생 80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고 짧다는 느낌만 든다. (윗글, 123)

 

유명종/ 희망사업단 대표

 

 

2015년도 관악구 어르신 자서전 제작자를 모집합니다.(5명 내외)

자서전 아카데미 일시 : 68~77(매주 화요일 오전 10~12)

문의 : 희망사업단 010-9204-7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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