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저널

칼럼   특별연재(지구온난화)   환경   선거일기   의학칼럼   기고   음악칼럼   산행기행   영화칼럼   유종필의관악소리   교육특별연재   신년사
호별보기 로그인 회원가입
컬럼
칼럼
특별연재(지구온난화)
환경
선거일기
의학칼럼
기고
음악칼럼
산행기행
영화칼럼
유종필의관악소리
교육특별연재
신년사
개인정보취급방침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컬럼 > 산행기행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5월의 지리산... “저 많은 흙은 어디서 온 것일까”
기사입력  2015/06/08 [18:35] 최종편집   
▲노고단 대피소에서 본 운해

 

 ■이변의 산행기행
5월의 지리산... “저 많은 흙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지리산은 동서로 뻗어있다. 서쪽 끝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30km 능선길을 타면 그 끝에 천왕봉이 자리 잡고 있다. 이십오 년 전엔 한달음에 내달렸건만 지금은 순순히 세월의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고, 5.5km전방 삼도봉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천천히 걸으며 지리산을 겪어 보기로 마음먹는다.


노고단 대피소 데크 위에 나무로 만들어진 식탁에서 아침을 먹으며 운해를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다. 노고단 운해는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데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밤 비에 젖은 대지가 습기를 뿜어내어 산줄기를 타고 오르며 구름을 만든 것이리. 망망대해는 태양 빛을 받으며 수면이 조금씩 하강한다. 구름바다 속에 숨어 있던 바래봉, 정령치가 서서히 떠올라 마치 섬처럼 운해 위에 머리를 드러냈다.


노고단 고개에서 갈 길을 가늠해 본다. 왼쪽 가까이 반야봉이 보인다. 지리산 제2봉.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그곳까지 5.6km이다. 그 우측 저 멀리 흐리게 천왕봉과 세석평전이 보인다.

▲노고단 고개에서 본 반야봉과 천왕봉



지리산 능선길 양 옆으론 나무와 야생초들이 도열해 있고, 그 가운데로 부드러운 흙길이 지나간다. 갈색 토양은 두툼하게 산 표면을 덮고 있고, 그 위로 온갖 식물 종들이 한껏 피어오른다. 지리산의 부유함은 저 흙에서 비롯된다.


바위산의 대표가 설악이라면, 육산의 대표는 지리산이다. 악산의 핵심은 솟아오른 화강암이 수억 년 풍파에 깎이고 바래져서 고색창연해진 봉우리이다. 그런데, 육산의 기원은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산을 두텁게 덮고 있는 저 많은 흙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성의 비밀은 지리산 지천에 널려 있는 돌들에 있다. 지리산 껍질 밑은 온통 편마암이다. 20억 년 전 지리산 일대는 바다였다. 육지에서 밀려들어 온 모래, 자갈이 뭉쳐 암석이 되었고, 그 암석 사이로 지각 아래에 있던 용암이 관입되어 종전의 암석에 열과 압력을 가했다. 쇠를 불 속에 달구고 두드려 단련하면 단단해 지듯이, 암석은 용암의 열을 받고 눌려져 조직이 단단해진다. 변성암이 되는 것이다.

 

드넓은 지역에 걸쳐 고온, 고압이 장시간 지속되면 편마암으로 된다. 이 암석은 화강암이나 퇴적암보다 훨씬 단단해서, 풍화작용으로 인한 마모가 적다. 지리산 일대는 5억 년 전 쯤 바다에서 떠올랐다. 비와 바람은 억겁의 시간동안 섬세하게 편마암을 갈아 흙을 만들어냈다. 편마암은 지리산이 육중하게 버티는 힘의 근원이자, 찬란한 생태계를 일군 과묵한 공신이다.

▲지리산의 기반, 편마암


김훈 작가는 "5월의 지리산 숲은 온 천지의 엽록소들이 일제히 기쁨의 함성을 지르듯이 피어난다"고 예찬하였다. 이 계절 지리산의 나무와 야생초 이파리들은 자신감에 넘쳐 있다. 토양에서 길어 올린 물과, 쉼 없이 잎을 두드리는 빛 알갱이와, 살랑대며 스치는 공기를 재료로 제 먹을 것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밖에서 먹이를 구해야 생존할 수 있는 이 비루한 동물을 보며, 윤택한 초록잎은 뽐내듯 광채를 발산한다.


햇빛은 숲속으로 들어오면서 이파리들에 부딪혀 산란되며 여러 색을 낳는다. 눈부신 흰색, 단풍잎처럼 노란색에서 옅은 연두색, 짙은 초록색, 검푸른 색까지 빛과 신록은 어우러져 색깔의 향연을 벌인다.


불과 5.5km 왔을 뿐인데, 삼도봉에선 천왕봉이 성큼 다가와 있다. 바로 뒤에 보이는 토끼봉을 넘어 천왕봉 가는 길을 밟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른다. 산에서는 가던 길을 가는 것보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가 더욱 어렵다. 인생길과 다른 점이다. 인생은 단 한번 살기에 되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천왕봉은 동쪽 끝에 있으니 일출이 볼만 할 것이요, 노고단은 서쪽에 있으니 석양이 볼만 할 것이다. 석양을 보려고 부랴부랴 노고단 아래 성삼재로 내려왔다. 다행히 해가 남아 있다.


불그스레한 빛이 하늘을 반쪽으로 가르더니, 산맥 뒤로 넘어가기 시작하자 온 천지에 붉은 물감을 뿌린다. 석양은 짧아서 지는 듯 싶으면 이내 까무룩 지고 만다. 일출은 서서히 오나 일몰은 갑자기 가버린다. 인생 또한 그러하리니.

 

이치선/ 서울대 물리학과, 변호사

ⓒ 관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미투데이 미투데이 페이스북 페이스북 요즘 요즘 공감 공감 카카오톡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주간베스트 TOP10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44길 35 대표전화 : 02-889-4404ㅣ 팩스 : 02-889-5614
Copyright ⓒ 2013 관악저널.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linuxwave.net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