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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오월에 적어보는 아름다운 추억 – 김애숙님의 꽃다운 감성
어르신자서전: <기억속 풍경> 저자 김애숙님 (2부)
기사입력  2015/05/21 [17:59] 최종편집   

 

▲ 중년의 김애숙씨

 

■어르신자서전: <기억속 풍경> 저자 김애숙님(2부)
푸른 오월에 적어보는 아름다운 추억 ... 김애숙님의 꽃다운 감성

 

추억은 성장기와 청년시절이 더 많은 것 같다. 결혼하면 일상이 강화되고 의무가 많아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기간조차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김애숙님의 글은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 오롯이 남아있어 푸른 오월에 읽기에도 좋다. 결혼 후 2년여 시간이 지난 뒤에 첫아이를 출산한다.

 

 1975년 3월 25일. 화요일. 첫 아이 태어난 날.
너무 심한 고통 때문에 나는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하며 소리를 질렀다. 14시간의 겪기 어려운 진통은 출산을 기쁨에서 공포로 몰아 버렸다. 나와 같이 밤새운 어머니의 안타까운 표정과 새벽녘에 병원으로 뛰어온 남편의 불안해하는 얼굴을 대하고, 나는 고통을 참으려 했지만 저 가슴 속에서부터 새어나온 신음은 계속 그치지 못하고 말았다.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너는 엄마의 고통을 알기나 한 듯 세상에 나올 채비를 끝냈다.


산모와 아기의 무사함을 비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너는 처음으로 우렁찬 울음으로 여태 것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 시켜줬다. 간호사의 “아들입니다.” 하는 소리를 먼 꿈결 속에서처럼 들으며 수고해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1978년 12월 30일. 토요일. 둘째가 태어난 날


아침밥을 지으려고 준비 하는 도중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출산예정일이 며칠 남아 있어서 무척 당황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큰애를 출산했던 파티마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의사 선생님은 감염될 것 같다며 유도분만을 하자고 하셨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진통이 짧다고 했지만 진통은 계속되고 결국 첫 번째 진통 때와 같이 14시간이 지나고 더디게 태어난 우리 아들. 12월 30일에 태어나 이틀 만에 한해를 후딱 보낸 우리 둘째아들, 아빠 엄마의 아들로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기억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33, 36~37쪽)


40여 년 전에 젊은 엄마였던 저자는 당시 태어난 아이에 대한 따뜻한 감성과 그 당시 문화를 반영하듯 부부간에 내외가 있던 시절이었다. 특히 경상도의 보수적인 문화는 더욱 이를 독특하게 나타내 주었다. 그래도 속 깊은 정이 있는 부부였다.  
 
1983년 10월 7일. 금요일.
십년 동안 남편의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데이트 한 적이 없다는 얘기를 누가 믿을까. 안동 권씨는 양반이라서 남이 보던 안 보던 부부간에라도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게 남편의 궁색한 변명이다. 십년 전 정월 초하룻날 선을 보고, 20일 날 예물 마련할 때 한번 만나고, 30일에 결혼식을 했다.


옛 사극 속에 나오는 부부처럼 부끄럽고 서먹한 시간이 꽤 오래 흐르고, 첫 외출 때 남편의 팔짱을 끼니 슬며시 팔짱을 풀어버린다. 다시 손을 잡으니 손도 슬쩍 밀어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다시는 남편의 팔에 손을 대지 않았다....한번은 번번이 시댁 동네 어귀에서 혼자 도망가는 남편을 골려주려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서 남편 팔짱을 끼고 집 대문에 들어 설 때까지 절대 팔을 풀 수 없다고 시침을 뚝 땠더니 남편은 누가 볼 새라 이리저리 살피면서 “빨리 놔. 빨리! 누가 보면 어찌하려고. 빨리 놔. 어서!” 하며 계속 눈은 이쪽저쪽 살피는 게 얼마나 우스웠던지. 깔깔 웃으며 “혼자 빨리 가 봐요.” 하고 팔을 놔 줬더니 재빨리 자기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기억 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39~41쪽)


그렇게 여름철과 같은 신혼이 지나고 결혼 후 십여 년이 흐른 뒤에 남편이 큰 수술을 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기록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자 가족은 서울로 올라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1989년 8월 9일. 수요일. 스무 평의 궁전
서울이란 낱말만 들어도 차갑고, 혼란스럽고, 인심이 야박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서울에서는 살지 않을 거란 생각을 여러 번 했었지만, 사람 사는 게 생각 같지만은 않아 남편이 직장을 서울로 옮긴 탓에 본의 아니게 서울에서 생활한지 올해로 10년이 된다.

 

1995년 4월 29일. 토요일. 얼굴
내년이면 쉰. 나이 마흔이면 자기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지만 책임져야 할 쉰의 내 얼굴을 미리 그려본다. 필경 봄의 신부처럼 화사하고 희망적이고 나이보다 젊게 싱그러워져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는다. 향내가 진하지 않고 크고 화려하지도 않은 곱디고운 보라색

제비꽃 한 송이를, 사시사철 내 마음 한 자락에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60, 70쪽)

 

이렇게 결혼 후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 96년에는 큰아들이 99년에는 둘째 아들이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2008년 봄에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낸다. 그리고 60대에 접어든 저자는 손주들의 재롱을 즐거워하며 다시금 꽃다운 감성으로 감사로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행복의 문고리를 살짝 당기고 얼굴을 디밀어 본다. 낯설지 않다. 성큼 한 발짝 발을 들여 놓는다. 문 안에는 가족 친구 이웃들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우리 두 아들, 어려운 시어머니를 살갑게 대해주는 우리 두 며느리, 할머니 할머니 하고 정겹게 불러주는 천사 같은 우리 손자 손녀들, 나를 깍듯이 챙겨주는 동생들, 연륜이 깊어진 친구들의 속 깊은 우정, 수영장에서 맺은 인연으로 알뜰살뜰 보살펴 주는 공주반 젊은 친구들의 배려, 날마다 마주쳐도 안부를 묻고 웃음을 나누는 이웃들, 돈으로는 절대 살수 없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고 행복의 근원이다.


지금 뒤돌아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모두가 다 지나 간다”는 말이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었던 일도, 벅차게 기쁘고 행복했던 일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일의 밑거름이 되어 있고, 곰삭은 추억이 되어 있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조금 남았다고 생각하니 모두 고맙고 감사한 일 뿐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누구에겐가 가끔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욕심일까…….(기억 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134,135쪽)


유명종/ 희망사업단 대표

재창간 2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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