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위 있는 어른과 줏대 있는 지식인을 기다리며
오늘날 한국 사회를 한 문장으로 묘사하라면 '윤활유 없이 맹렬히 회전하는 베어링'이라 말하고 싶다. 정치, 사회, 세대, 젠더 등 모든 전선에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고, 쇳소리를 내며 마모되는 소리가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이 극심한 마찰을 줄여주고 과열을 식혀줄 '윤활유'가 보이지 않는다. 갈등이 격화될 때 이를 중재하고 사회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元老)'가 실종되었고, 상아탑의 지식인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 또 다른 갈등의 당사자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대로라면 베어링은 머지않아 타버리고, 우리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는 멈추거나 망가질 것이 자명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권위'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는 복종을 강요하는 낡은 '권위주의'가 아니다. 깊은 학식과 통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 즉 '참된 권위'를 말한다. 우리는 권위주의에 대한 오랜 반감 속에서, 옥석을 가리지 않고 진짜 권위마저 내던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도, 홍수를 조절하는 댐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200여 년 전 한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신분과 학파의 권위가 하늘 같던 때였다. 하지만 다산은 그 어떤 권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옳다는 확신이 서면, 힘있게 주장하고 강단 있게 밀어붙여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 '불포견발(不捕堅拔)'의 정신을 체현했다.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나아가 기어코 뿌리를 뽑아낸다는 뜻이다.
삐걱거리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윤활유'는 결국 다산과 같은 지식인,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어른의 존재다. 맹목적 추종을 강요하는 권위가 아니라, 치열한 자기 성찰과 학문적 양심에 기반해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참된 권위 말이다. 그들은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며, 격렬한 논쟁을 통해 사회가 나아갈 더 나은 길을 제시할 것이다.
다산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용(勇)', 즉 용기를 꼽았다. 그는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인가? 나도 노력하면 그와 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용기라고 말했다. 최고의 목표를 세우고, 그와 나란해지는 것을 기약하며 정진하는 자세. 현실 논리에 타협하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해서는 결코 큰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오늘날 우리 지성계에 결여된 것이, 바로 이 '비난을 감수할 용기'가 아닐까.
좌우의 편 가르기 속에서 비난의 화살을 맞을까 두려워 입을 닫거나, 깃발이 분명한 쪽에 서서 안온함을 추구하는 모습이 팽배하다.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돌을 던지는 사회에서는 제2, 제3의 다산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 줏대 있는 지식인이 그리운 오늘, 우리는 다산에게서 시대를 건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