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와 그의 정치적 유산
한국 정치사의 거목이자,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영면에 들었다. 7선 의원이며, 그중 5선은 관악구와 인연을 맺었다. 또한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현대 정치사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중심에 섰던 고인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그는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시대의 소명을 감당했던 인물이었다. 여야를 떠나 그의 부재는 한국 정치계에 큰 빈자리를 남길 것이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우리 정치에 남긴 유산과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이해찬 전 총리의 가장 뚜렷한 정치적 족적은 ‘투쟁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승화시킨 데 있다. 재야 운동권 출신이라는 태생적 배경을 가졌음에도, 그는 제도권 진입 이후 운동권 특유의 관념적 담론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치밀한 논리와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책 중심의 정치’를 구현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한국 정치가 단순히 이념 대결의 장을 넘어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이끄는 질적 성장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감성적 호소보다는 차가운 이성을, 구호보다는 해법을 중시했던 행정가형 정치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그가 보여준 ‘책임총리제’의 구현은 한국 대통령제 운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치(內治)와 행정부의 일상적 운영권을 과감히 위임받아 국정 전반을 총괄했던 그의 모습은 헌법상 국무총리의 위상을 실질적으로 정립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더 거슬러 올라가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으로서 단행한 개혁 또한 그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교원 정년 단축 등 기득권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 앞에서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당시에는 교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기득권을 타파하고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해찬이라는 정치인이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변화를 만들어내는 ‘개혁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호불호와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겠지만, 정쟁과 혐오가 난무하는 정치 현실에서, 치열하게 정책을 고민하고 국정 운영의 기틀을 다지려 노력했던 고인의 자세는 후배 정치인들이 되새겨야 할 귀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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