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싱가포르의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
1인당 GDP 8만 달러의 부유한 도시 국가, 완벽한 치안과 효율적인 시스템 등, '아시아의 유토피아'라 칭송받던 싱가포르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 지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정작 그 땅의 주인인 청년들은 "이곳은 더 이상 우리를 위한 땅이 아니다"라며 외치고 있다. 화려한 마천루의 그늘 아래서 국가가 약속했던 '안정적 번영'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싱가포르의 현재는 단순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닮은꼴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엄중한 경고다.
싱가포르 위기의 진원지는 '살인적인 생활비'에 있다. 글로벌 자본의 무제한적 유입을 허용한 대가는 혹독했다. 중국계 거대 자본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키며, 최근 1~2년 사이 월세가 최대 50%까지 폭등했다. 평범한 방 3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600만 원을 호가하는 현실 앞에서,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청년들조차 미래를 포기하고 있다. 여기에 차량취득권리증(COE) 가격이 1억 원을 넘어서면서, 중산층에게 '이동의 자유'는 구매해야 할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성장의 과실이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성장의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싱가포르 번영을 지탱하던 세 가지 기둥마저 흔들리고 있다. 태국의 크라 운하 건설 추진으로 물류 허브로서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고 있으며, 미·중 갈등 속에서 생존 전략이었던 등거리 외교는 한계에 봉착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인구 구조의 붕괴다. 합계 출산율 0.97명이라는 충격적인 수치는 더 이상 구성원들에게 재생산의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것이란 예측을 보여준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인간을 경제 성장의 부품으로 취급해 온 '정밀 기계' 모델이 예상치 못한 한계에 부딪힌 셈이다.
우리는 이 '먼 나라의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다. 싱가포르가 겪고 있는 고통의 목록 즉,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주거 불안,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 이민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등은 우리가 직면한 병리 현상과 닮아 있다. 우리도 GDP라는 숫자의 마법에 취해, 국민 개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소리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국가의 부유함이 개인의 행복으로 환원되지 않을 때, 그 시스템은 내부로부터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의 본질은 사람이 머물고 싶어 하는 행복한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공동체의 온기를 잃어버린 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시 경제 지표의 개선이 아니라, 청년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취업, 주거 안정, 삶의 질 중심으로의 정책 전환이다. 싱가포르의 눈물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숫자를 넘어선 '사람 중심의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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