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맹신의 시대, 우리는 안전한가?
20세기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그의 저서 『맹신자들』에서 충격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광신적 기독교 신자, 이슬람 신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추종자들의 심리 구조와 행동 패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양극화'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 사회적으로는 세대와 성별, 경제적으로는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라 국민은 분열되어 있다. SNS 타임라인은 각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메아리방이 되었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진영 논리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상대 진영의 주장은 내용을 듣기도 전에 배척되고, 내 진영의 주장은 논리적 검증 없이 받아들여진다. 정치인의 동일한 행위도 '우리 편'이 하면 용기 있는 결단이 되고, '저쪽'이 하면 독재적 폭거가 된다. 호퍼는 "모든 대중운동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인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다. 비판적 사고 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본질은 같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소속감과 정체성 때문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가.
호퍼의 분석에서 가장 섬뜩한 대목은 "좌절한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특히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개인적 실패와 사회적 소외감은 자아를 약화시키고, 그 공백을 채워줄 강력한 집단 정체성을 갈구하게 만든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지금 집단적 좌절 속에 있다.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고, 내 집 마련은 꿈도 꾸기 어렵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사회적 약속은 깨졌고, '공정'이라는 가치는 진영 간 논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이러한 좌절은 온라인 극단주의 커뮤니티로, 성별 갈등으로, 음모론으로 표출되고 있다. 역사는 경제적 좌절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1930년대 독일의 청년들도 절망 속에서 극단적 나치즘에 매료되었다. 우리는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좌절한 시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증오를 수확하게 된다.’ 정치권과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좌절을 '나약함'이나 '과잉 피해의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직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자기 검열과 상호 견제’로 작동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상대의 주장에서 합리적 요소를 찾아내며,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겸손함을 유지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해진다. 2025년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좌절은 쌓여가며, 맹신의 유혹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비판적 사고를 회복하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맹신의 시대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