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바라기는 해만 바라보는 꽃일까?
해바라기는 중국어 ‘향일규(向日葵,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를 번역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유럽에서도 ‘태양의 꽃’(sunflower)으로 불렸다. 그러다 보니, 해바라기는 해(sun)만 바라보는 꽃이란 인식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래된 상식은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판명 났다. 더 재밌는 것은 ‘해바라기’라는 말은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긍정적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즉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란 ‘자신의 주관과 철학, 가치관이 부족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란 말은 ‘시류에 편승하는 줏대 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이해된다. 식물로서의 해바라기는 성장 초기, 즉 꽃봉오리와 줄기가 아직 어릴 때 실제로 해를 따라 움직인다. 이 현상은 ‘향일성(heliotropism)’ 혹은 ‘굴광성(phototropism)’으로 불리며, 해바라기 줄기의 한쪽이 햇빛을 받으면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반대쪽은 빨라져 줄기가 해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꽃이 완전히 피고 성숙한 해바라기는 더 이상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성숙한 해바라기 꽃은 태양만 바라보면서 따라가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란 성숙하지 못한 인격체를 상징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서 해바라기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발견된다. 시간만 나면, 유튜브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비와 같다. 구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장 다루기 쉽고 조정 가능한 존재로 본다.
구글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들이 좋아하는 성향을 파악하고, 입맛에 딱 맞는 사이트를 계속 제공하면서 길들여간다. 결국 그들은 손쉬운 구글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주장은 유튜브가 알려준 것이며, 거품을 물고 지지하는 논리도 거기서 온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는 두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과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이다. 민주주의는 ‘노예가 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피나는 투쟁의 결과로 주어진 선물인데, 이제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아우성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추종 대상자’를 찾아 헤매는 수많은 해바라기를 보고 있다. 오히려 식물의 생명보다도 못한 분별력을 보여주면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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