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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 주권적 권력을 꿈꾸자!
-봉건주의, 민주화세력, 아나키즘을 가장한 봉건주의를 넘어-
기사입력  2022/01/19 [16:23] 최종편집   

 

▲안영혁예본교회 목사총신대학교 교수

 

(안영혁 칼럼)

만인 주권적 권력을 꿈꾸자!

-봉건주의, 민주화세력, 아나키즘을 가장한 봉건주의를 넘어-

 

 

봉건 사회를 넘어 민주화된 사회는 자유를 얻었다. 거칠게 말하면 권력과 신분 차별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양반과 쌍놈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자유는 점점 경제적 자유가 되었다. 오늘날 법률이 경제에 관하여 제한을 두는 규정들은 타인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권력이 무조건 경제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어떻든, 권력은 주로 경제적 자유를 지켜내는 것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민주화로 감춰진 문제가 마르크스에 의해 송두리째 폭로되었다. 기실 역사는 경제적으로 더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화된 사회는 봉건적 사회의 다음 단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민주화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만인의 경제적 평등이었다. 그것은 능력의 차이조차 소거할 수 있는 그런 사회여야 했다. 그런 것을 위해 폭력 혁명도 불사하였다.

 

 

그러나 폭력 혁명은 너무나 즉각적인 악이었고, 그것을 지키는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언을 고했다. 현재의 중국 같은 나라는 이미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자본주의만 남는 줄 알았는데, 그 자본이라는 것의 기득권, 권력과의 결탁, 빈부의 고착 같은 성격은 고질적이었다. 사실 민주화 사회는 이 정도일 뿐이다.

 

 

이런 문제를 넘어서고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써서 경제적 평등 문제를 다시 건드렸다. 기득권이 된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고율의 누진 재산세를 부과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위한 마지막 인공호흡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기득권층이 그걸 할 것 같지는 않다.

 

2022년 대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마디로 한심스럽다. 내 눈에는 도적들의 수괴처럼 보이는 한 사람과 닥치고 자수성가형인 한 사람이 부딪쳐서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으려는 형세다. 길게 보면 인자하고 바르고 똑똑한 대통령을 세울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번 대선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민주화 세력의 자본주의도 아니고, 피케티의 애끊는 노력도 아닌 다른 세계관을 필요로 한다.

 

놀랍게도 비트코인이 그런 세계를 보여준다. 코로나 감염 하나에 국가가 돈을 수없이 찍어내서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세상이다. 경제를 제어하는 것이 결국 돈 많은 나라의 의중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럴 수 없는 경제 체계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들의 꿈이다.

 

 

하나의 기관에 집중시키지 않고 모든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화폐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암호화폐의 기본가치는 작업증명과 지분증명에 있다. 작업증명은 화폐를 얻기 위해 노력한 만큼 화폐의 가치분을 얻게 된다는 개념이고, 지분증명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들이 함께 시행한다.

 

 

코인 시장이 생긴 까닭에 작업증명에 달러로 값이 매겨지고 그 가치가 오르내리고 다시 투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가치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들에 의하여 매겨진다. 공부하시라!

 

중앙은행이 필요 없는 경제적 가치 체계를 형성하듯이 대통령이 필요 없는 권력 체계에 대한 사회적 노력이 요청된다. 과거에는 이런 것을 아나키즘 즉 무정부주의라 불렀는데, 비트코인은 경제적 아나키즘의 안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나키즘이 어떤 특정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 해체 갈망이 아니라, 만인이 권력을 인정해줌으로써 권력 가치를 갖는 그런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현실화 추구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지금 민주화 세력은 꼰대가 되었고, 이준석은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민주화세력을 꼰대라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준석의 실제 기반은 봉건주의다. 봉건적 세력 획득을 꿈꾸면서 민주화 세력을 흠집 내기 위해 초현대적인 아나키즘을 갖다 댄 것이다. 진정성은 없고 권력 욕구만 가득한 궤변이다. 만인의 아나키즘을 욕보이는 발상이다. 봉건주의, 자본주의를 넘지 못하는 민주화세력, 아나키즘을 가장한 봉건주의. 이들이 권력을 가질 수 없는 권력 체계가 요청된다.

 

 

그것은 만인이 권력을 관리하는 새로운 권력과 정치의 체계이다. 그 상상력은 비트코인에 있다. 이번 대선 결과가 치명적이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라면서, 이제 세상은 저 만인 주권적 권력 체계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

 

안영혁(예본교회 목사, 총신대학교 교수)

 

 

 

재창간 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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