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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도덕과 은혜
기사입력  2020/09/24 [19:19] 최종편집   

 

▲안영혁 목사


(안영혁의 힐링칼럼)

과학과 도덕과 은혜

 

철 지난 듯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교회와 사회가 대립했던 것이 너무 불편했다. 교회의 잘못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목사로서 교회가 아니라 사회와 정부를 향해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 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고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당연히 예배도 중단해야 한다는 투의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 이미 사회와 교회 사이에 균열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종교는 인간의 꿈이 서려 있는 곳이다.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예배를 어떻게 드린들 어떠냐 하고 말하는 많은 입장들은 마치 성소수자의 입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것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일 수 있다.

 

사회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터지자 일사불란하게 종교행사를 중단한 가톨릭이나 불교를 훌륭한 종교라 생각하고, 그것이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부분이 그럴 것이라 본다. 심지어는 목사라는 분이 개신교교회가 저렇게 대면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것은 헌금 때문이라는 내부고발을 하기도 했다. 혹 그런 교회가 있다 할지라도 개신교교회가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런 말이지만, 종교개혁을 보는 시선은 여러 각도가 있다.

 

그런데 개신교교회의 종교개혁은 어떤 면에서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일사불란함에 대한 반대이기도 했다. 타종교인들이 보기에는 개신교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서 제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개신교교회 자유의 일면이다. 개신교교회는 일사불란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처음부터 가지고 출발했다. 이것은 필자가 무질서를 지향한다는 말이 아니다.

 

필자는 모든 면에서 할 수 있다면 합리적인 방향을 향하고, 교회 활동도 그리로 가져갈 수 있기를 바라는 목사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 마디는 크게 자괴감을 불러왔다. 방역은 과학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 방역은 과학이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앙이다. 우리는 방역의 과학을 받아들이고도 신앙이 더 중요해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말할 자유는 정말 없는 것인가? 교회를 향하여 삼고초려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리적이기만 한 사람들에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예배의 중요성은 과학의 중요성과는 다른 범주에 있다. 교회는 헌법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 때문에 자유를 갖는 것이 아니라, 원래 신앙은 헌법 이상이기 때문에 자유인 것이 교회의 생각이다. 사회인들은 국가는 크고 교회는 한 부분이라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크시고, 국가는 한 영역이다. 입장이 다르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핵폐기물 처리장 지역을 정하기 위한 주민 투표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 정말 민주주의가 왔구나! 첫 대상지였던 부안에서 거절되고 경주 주민 투표에서는 받아들여져서 그곳에 핵폐기장이 세워지기까지 모든 단계는 국민 혹은 주민의 입장이 최우선이었다. 요즈음 사회와 교회가 방역 문제로 부딪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개신교인들은 마치 딴 나라 사람 같다. 개신교인 스스로도 그런 문제를 가졌고, 역으로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필자가 대면예배를 강행한 목사는 아니다. 교회가 작아서 우리교회는 대면예배를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지만, 사회와 함께 가기 위해서 꾸준히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 하나를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진정으로는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사회는 당장 때려치우고 우리를 따라 하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느껴진다.

 

요즘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문제가 아닌가? 여기에도 개신교교회의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필자로서는 역으로 개신교가 사회 전반으로부터 차별당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려운 시기마다 교회의 방역을 문제 삼는 정부가 밉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소상공인 생계를 걱정하는 정부는 훌륭하다. 그러나 왜 작은교회 목사들 걱정은 하지 않는가? 어쨌든 국가는 종교인 세금도 관철시키지 않았는가?

 

교회가 지성과 덕성을 넘어 신앙까지 가진 공동체이니 사회보다 더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맞다. 그런 면에서 사실 이번 방역 문제에서 교회가 잘못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잘못을 질타하는 사회가 너무 차가웠다. 정부가 앞장섰다. 과학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실존을 박살 낼 수 있다. 그리고 도덕은 나와 너를 동시에 살리는 인간학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 둘을 가지고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에 은혜를 구한다. 특히 개신교는 그렇다. 고심하며 교회와 정부를 바라볼 때 그렇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친절해야 한다. 불교와 가톨릭의 협조가 그렇게 당연해 보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개신교를 이해할 마음도 정부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도 바쁘고 목사들도 바쁘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전에 핵폐기물 처리장은 그런 과정을 거쳤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보니 그때 그 민주주의가 그립다.

 

안영혁(예본교회 목사, 총신대학교 교수)

재창간 3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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