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출 칼럼)
광복절 날을 이렇게 보내면 안된다
75년 전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그날....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든 총칼에 벌벌 떨면서 숨어 지냈던 국민들이었건 모두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그날만큼 기억에 깊이 남는 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해 그리고 또 한해가 지나면서 그 아픔과 환희를 기억하는 분들이 사라지면서, 이제 형식적인 기념일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전 가족이 몰살당하고, 일제의 고문에 반신불수가 되었던 조상들이 살아나서 우리를 보신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연휴가 하루 늘어나면서 많은 분들이 코로나 와중에도 공항은 여행객으로 붐볐다고 한다. 소비가 진작되어 경기가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날만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 이것이 이 평화의 시대를 물려주기 위해 목숨을 버린 조상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과거의 기억을 후손들에게 철저하게 계승시키는 몇 나라들 중에 이스라엘만큼 철저한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에 의해 수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사실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들은 생생한 자료들을 모아서 이스라엘의 국립 추도 시설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건립했다.
이 기념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스라엘인 아니라고 해도 눈물을 흘리면서 ‘인간의 광기가 만든 살육’에 치를 떤다고 한다. 하물며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은 어떤 눈으로 그것을 볼 것이며, 어떤 결심을 할 것인가? 지금도 이스라엘은 300:1의 비율로 적대국가가 빙 둘러 싸고 있는 형국이다. 인구 900만 정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어떤 나라도 함부로 침략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후손들에게 ‘그들을 용서는 해 주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 역시 일본에게 36년간 성과 이름을 빼앗겼으며, 언어와 정신까지 모두 짓밟힌 적이 있었다. 어린 소녀들이 정신대로 끌려가서 위안부가 되었지만 지금도 일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극일(克日)의 정신이라는 것이 분노와 증오 그리고 민족주의에 갇혀서는 안 될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삼키며 새로운 결단과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그런 것마저 다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냉정하고 철저하게 이 비극적 역사를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방법조차 시대에 맞도록 연구하고 기획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라고 했다. 적의 괴수를 처단하려는 뜻을 품은 분이 어떻게 이런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초조하고 긴장된 시간들 속에서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을 우리에게 남겼다.
이스라엘이 기념관을 찾는다면, 우리는 극일의 현장에 계셨던 분들의 전기와 저서를 읽는 것도 한 방편이 되리라 생각한다. 생생하게 그때 그 현장으로 옮겨줄 수 있는 것으로 책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8월 한 달 동안은 전 국민이 ‘일제의 압제와 광복운동’을 전해줄 수 있는 책을 선정하여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가지고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토론하고 발표하는 행사를 갖는 것이 ‘8.15기념행사’ 못지않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기념하는 여행을 가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8월의 도서로 매해 마다 국민들의 참여로 책을 선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언론도 앞장서서 이런 일을 보도하고 알려서 전 국민이 자연스럽게 극일(克日)의 정신을 새롭게 다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6.25기념일과 비슷한 ‘욤 키푸르’날이 되면 모든 교통수단은 모두 멈추는데, 비행기조차 운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은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당연히, 모든 종류의 요식업과 평범한 상점도 다 문을 닫는다. 심지어 감동의 기억조차 소멸되는 시간이 매우 짧다고 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되새기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