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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수필 : 전태권 회장의 회고록(1)
황혼 고별이 가까워지는 당신에게!
기사입력  2020/06/03 [22:28] 최종편집   

 

▲가족사진

 

어르신 수필 : 전태권 회장의 회고록(1)

황혼 고별이 가까워지는 당신에게!

 

결혼한 지 반백 년이 넘은 긴 세월! 돌이켜 생각하면 그 기나긴 세월이 어찌 지나갔는지, 큰아들이 55세이니 당신과 결혼한 지 56년의 세월이 지났소!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백발이 되고 곱고 곱던 당신 얼굴은 자잘한 주름살이 가득하오. 31여 키우고 결혼시켜서 손자 6, 손녀 2명인 8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만 생각했는데, 2018년에 손녀, 손자가 결혼하여 2019년 증손녀를 보았으니 틀림없는 노인네가 되었소.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당신 건강. 나를 두고 갑자기 당신이 떠나버릴까 요즈음 두렵소!

 

열 손가락, 양 손등이 살 한 점 없어 보이고 주름살뿐인 당신의 손. 가냘픈 체질 체구로 21세에 7형제 장남인 나와 중매결혼하고, 9년 뒤 시어머님이 60세 회갑 전에 고혈압으로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소천하시어서 시동생 4명과 우리 아들딸 4, 8명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킬 때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였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옵니다.

 

 

특히, 두 시누 결혼시킬 때 장모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두 시누 남편들 한복 두루마기까지 해주고, 이바지도 전문 업체에 주문하여 과일류, 생선류, 참깨·들깨 강정, 백산자 등 최고급으로 보내어 시누의 시어머님께서 어느 친정어머니가 이렇게 고급스러운 이바지를 할 수 있겠느냐며 감탄하시었지요.

 

 

10년 뒤에 외동딸 결혼 시킬 때 사위 한복을 못해준 것은 어쩔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딸, 사위한테는 항상 미안한 일이었소.

 

 

20191224일 당신 낙상사고가 수명을 단축할까 내심 불안하여 헌신적인 당신 일생을 요약하여 보았소.

 

파산 막아준 장한 큰며느리

 

 

어머님이 1950년대에 쌀계 20가마, 30가마 두 계 왕주를 잘 마무리하여서 같은 계원들이 100가마 쌀계 구성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1960년도에는 쌀 100가마 왕주로 첫 번 왕주몫 100가마를 타서 전북 부안군 소재지에서 미곡상을 운영하던 시가 집안 조카사위 김00씨에게 20%의 이자 받는 조건으로(보릿고개 시절 당시 50% 이자 장리변시절) 차용증을 받고 대여하여 주었습니다.

 

 

어머님은 다음 해 2번 쌀계원에게 또 100가마를 태워준 뒤 3번 쌀계 순번인 처조카 사위 김00씨에게 쌀 100가마를 태워주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시조카 사위 김00씨가 사기도박에 걸려 재산을 탕진하고 야밤도주하여 큰 어려움이 닥치셨습니다. 쌀계 4번 순번인 차00씨에게 100가마 쌀을 태워주려면 1번 왕주 몫과 3번 처조카 사위 몫까지 30가마를 지출해야 쌀계 운영이 되는데 시조카 사위가 야밤도주하여 큰 어려움이 닥친 것입니다.

 

 

어머님은 지역에서 체면 유지가 필요하였고 왕주로서 책임이 있기에 타인에게서 빚을 내어서 4번에게 100가마 쌀을 태워 주었지요. 그렇지만 계속 쌀계 90kg 30가마니 두 몫을 5년 기간 지급 해결할 여력이 없어 아주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그즈음 나는 군대에서 집안 어려운 사정을 모르고 제대하였소.

 

 

30대에 청상과부가 되어 수절하고 길삼으로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을 정도(몸채, 5칸의 사랑채, 축사소유)로 가세를 일으키신 할머님(곽원옥)의 장손자 결혼 요구 성화로 집안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모른 채 당신과 중매 결혼하게 된 것이었소.

 

 

당신 역시 머슴 두 명을 고용한 부유한 가정에서 막내딸로 태어나서 연세 높으신 장인 어르신이 죽더라도 막내딸을 결혼시켜야 눈을 감고 갈 것이라고 당신 결혼을 서두르신 사실을 알게 되었소.

 

 

19651024일 결혼 뒤에야 우리집 경제가 쌀계 때문에 심각하게 어려워진 사실을 알게 된 후 해결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방법이 없었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솔직히 알리고 신혼이지만 상경하여 취직해 그 수입금으로 어머님 쌀계 문제를 해결할 생각으로 당신에게 고백을 한 것이었소.

 

 

당신이 10여일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친정에 갔을 때 나는 잠도 못자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였다오. 막내딸로 귀여움만 받고 성장하여서 결혼 초 나쁜 마음을 먹고 가출해버리거나 아니면 운명을 비관하고 자살해 버리지나 않을까, 당신이 친정아버지 어머님에게 시가의 어려운 사실을 말하면 우리 가정 경제의 급박한 사정을 아신 후 두 어르신이 얼마나 고통을 받으실까 등등.

 

 

다행스럽게도 장인 어르신께서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리 소재 77번지-1~5 , 296번지 1, 2의 야산과 토지 4천여 평을 타인에게 경작료 받고 임대하여 준 것을 우리에게 경작하여 보라는 좋은 해결책을 가져온 것이었소. 밭농사도 안해본 당신에게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로서는 최상의 선택이었소. 친정 도움을 받고 5년 농사가 시작될 때 친정 머슴의 소밭갈이부터 시작하여 고추농사, 산두벼농사 시에 장인, 장모님이 당신을 도우려고 밭에서 땀 흘리시며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 죄송스러운 마음 너무 무거웠소.

 

나는 운 좋게 논산 훈련소에서 위생병으로 병과를 받고 신병 교육 후 120명이 마산 육군 군의학교에 입교하고, 마산 육군 군의학교 수료 후 성적이 우수한 10명에 선발되었소. 이어 부산 3육군 병원 물리 치료반 교육생으로 10주간 교육을 이수한 후 서울 도봉구 소재 육군 제7후송병원 스테이션 위생병으로 근무하여 병실 위생병보다 시간이 있어서 제대 6개월 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소.

 

그 해 1년 농사 수확 전에 경찰공무원 첫 번째 시험에 응시하고 운 좋게 합격하여 교육 후 첫 배치 근무지가 전라북도 순창 경찰서라 출퇴근이 불가능해 하숙생활을 하게 되었소. 그래서 농사일도 도와주지 못하고, 적은 월급에서 하숙비 주고 나면 당신에게 내 부모님 농사비용을 얼마 보태주지 못하여 안타까웠소. 5년 기간 당신의 헌신적, 희생적인 농사 노동으로 시어머니의 쌀계 90kg 150가마를 변제하여준 당신한테 나는 너무나 큰 빚을 졌소.

 

 

그래도 당신은 힘들게 5년 기간 밭농사로 계쌀 90kg 1년에 30가마씩 150가마를 부모님께 드려서 시부모님의 시골 논, 밭 매도처분을 막아준 장한 며느리였소.

 

만약 당신이 100가마 쌀계이자 두 몫을 해결해주지 못하였다면 4천여평 농토를 해마다 처분하여 30가마씩 5년 기간 동안 지출하여 해결하였을 것이고, 부모님 마음 상처가 얼마나 크고 노후를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게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고마움이 가슴 가득하오.

 

당신은 세 아이를 큰아들은 친정에, 둘째와 셋째는 시부모님께 맡기고 밭농사일을 할 때 얼마나 고생하였을까? 나와 결혼한 것을 여러 번 후회도 하였을 것인데... 당신이 있어서 부모님 노후가 비참하지 아니하고, 시동생들까지 정상 교육을 받고 결혼도 사회생활도 잘하게 하였소. 정말 고맙소.

 

내 동생들은 우리가 결혼할 때 고2, 3, 1, 초등학교 4학년으로 4명의 형제가 학생이었소,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남동생이 대학교 등록금 부족시 당신은 결혼 예물들을 처분해 도와줬고 그 동생이 국가정보원 이사관 고위직으로 재직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2003년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소. 당신 남편인 나는 경찰 공무원 파출소장으로 1999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근정포장과 장관표창 등 25회 수상하였고,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표창과 서울시장 표창 등 총 30회를 수상하였으니 우리 가문의 영광이었고 당신 덕이었소.

 

결혼 9년 뒤 어머님의 60세 소천으로 효도할 시간을 주시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신 점을 큰 며느리 당신이 항상 아쉬워했소, 어머님이 무슨 바쁜 운명이어서 회갑도 못 쇠시고 가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마다 당신이 착한 며느리라는 것을 나는 느꼈소.

 

 

다른 사람 같으면 부모님 때문에 결혼 초 좋은 시절을 주말부부로 지내고, 농사일로 죽을 고생 하였다고 원망할 텐데. 그 고생을 다 하고도 또 어머님이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녀 자식들한테 효도 받았을 것이라고 당신이 아쉬움을 말할 때마다천성이 착한 며느리라는 감명을 받았소.

 

2부는 다음 호에 계속

전태권/ 휴먼시아아파트 경로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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