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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기사입력  2020/06/02 [20:35] 최종편집   

(사설)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 

 

 

한때, 카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결정은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 보증되기 때문에 결단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따라서 교황이 보증하는 소위 면죄부에 대해 교인들은 신뢰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시대에도 인간의 직관은 살아있었으니, 그 증거가 종교개혁이다. 

 

즉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에 붙인 95조항 반박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도 느끼고 있던 대로 면죄부에 대한 이야기는 거짓이며,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 증거로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주장에 대해 열정적으로 지지했고, 그 분위기를 교황청에서도 감지했다는 것이다. 종교의 힘이 절대적이고, 일반인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던 시절에도 ‘그것이 틀렸다’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모든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자유롭고 지적인 시대에 ‘거짓을 감춘다’고 해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경고이며 진리다. 어떤 단체나 기관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더라도, 사람들이 모여서 하다 보면 실수와 오류는 필연적이다. 마치 샌달을 신고 사막을 걸으면, 발에 먼지가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같다. 자주 살피고 씻지 않으면, 깊고 진한 때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피부인지 때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도 “너가 본다고 하니 너의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잘못이 없어, 죄가 없어”라고 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그것을 보는데, 정작 자신은 보지 못하니 너가 장님이라는 뜻이다. 작은 잘못일 때, 씻고 넘어가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우리가 종교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작은 죄’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더 깊은 잘못과 큰 죄에 빠지는 우(遇)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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