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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봄직한 삶의 레시피
기사입력  2008/09/30 [00:00] 최종편집   

(영화사랑)고대권의 천기누설 - ‘텐텐’

미키 사토시 감독의 <텐텐>은 생각해보기를 중단한 사람들을 향해 장난을 거는 착한 장난꾸러기의 미소를 닮은 영화다.

영화의 구성은 단조롭다. 대학 8년 차 날백수 후미야는 사채업자에게 80만엔의 빚을 지고 있다. 후미야가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후미야에게 빚쟁이 후쿠하라가 놀라운 제안을 한다. 후쿠하라의 도쿄 산책에 벗이 되어준다면 100만엔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이 영화의 큰 플롯은 어려서 친부모에게 버림 받은 후미야가 후쿠하라를 만나 아버지에게 느낄 법한 부성애를 느끼고 더 나아가 유사가족을 만들게 된다는, 다소 익숙한 설정이다. 그리고 여기에 일본 영화들이 그렇듯 소소하고 잔잔한 유머들을 조금은 오타쿠 같은 취향으로 버무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생각해보려는 사람들이다. 후쿠하라는 도쿄의 곳곳을 거닐며 아내와의 경험을 하나 둘 생각해본다. 어느 일요일 밤, 왜 아내는 텅 빈 버스에 나를 남겨두고 먼저 내려버렸는가. 후미야는 자신의 삶이 좋은 가정에서 시작되었다면 과연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비록 이미 쭉 짜진 치약처럼 돌이킬 수 없긴 하지만. 후쿠하라 아내의 직장 동료들은 다른 동료의 가마에서 나는 냄새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한다. 무슨 냄새였더라, 무슨 냄새였더라, 아 절벽 냄새였지. 후쿠하라의 가짜 아내는 생각해보려 한다. 카레가 가장 맛있는 시간은. 그리고 후쿠하라는 생각했었다. 카레를 한 달간 끓이면 양념이고 향이고 모두 날아가 맛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이들은 모두 생각해낼 필요가 없는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괴짜라고 부른다.

이들 괴짜의 삶은 뭐랄까, 오타쿠 같다. 철저하게 자기 세계에 갇힌 자들의 무료하고 무위한 시간보내기 말이다. 하지만 이들을 오타쿠로 규정하는 ‘우리의’ 내면에서는 좀 더 복잡한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특정한 사람을 오타쿠로 규정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우리 자신은 오타쿠가 아니라는 자부심(?) 같은 것이 숨어있다. 그리고 이 자부심은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 확신을 얻고 싶은 욕망의 자기만족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달리 보자면 자신이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종의 ‘불안’에 대한 우회적인 해결일 수 있다. 내가 제대로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는 힘들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고 치부하기는 쉽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어떤 식의 평가를 내리면서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엄밀하고 객관적인 인식을 지연시킨다. 당장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진정 눈물겹도록 행복한가라고 묻는 것보다는 타인의 불행을 위안삼아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안식에 이르는 쉬운 길이다. 하지만 이것은 곧 진정한 자신의 삶과 행복을 지연시키는 마취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 오타쿠적이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용어가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 걷어낸다면, 이들에게는 타인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화두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뛰어가고 차를 타고 날아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걸어가고 장난치고 어딘가에 들르고 잠시 멈춰서고 엉뚱하게도 영화의 엑스트라로 참여한다. 이들에게 무언가 부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이 자신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무작정 빠르게 사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느리게 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에게 적당하고 편안한 속도를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저 뒤에 두고 타인이 강요하는 속도로 살아가기가 쉬운 세상이다. 생각해봄직한 문제들이 있더라도 제쳐두고 우선 타인이 혹은 사회나 직장이 요구하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나친다.

삶을 대면한다는 것은 아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할머니의 모습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분명 나이를 먹었지만 나는 나이 먹는 것이 싫지 않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 말이다.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 후미야(과거의 가족)와 후쿠하라(며칠 전 실수로 죽인 아내)가 뒤로 걷기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향해 걸어가기를 바라고 있을 때, 할머니는 나이 먹어 가기,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향해 걸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할머니에게 뒤로 돌아 걷기는 한 번 해봄직한 장난 같은 것이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후쿠하라는 자신의 삶과 시간을 향해, 그것이 있는 경찰서를 향해 종종 걸음으로 뛰어간다. 후쿠하라가 떠나고 이제 후미야는 자신의 삶에 남겨진다.
고대권 관악FM(www.radiogfm.net) 기자

<관악저널은 관악FM과 상호 기사를 교류하여 다양한 기사를 제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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