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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
기사입력  2020/01/22 [14:38] 최종편집   

 

▲ 권영출 본지 회장


(권영출칼럼)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

 

나치 전범 중에서 추후 체포되어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인물은 단연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나치 친위대 중령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게슈타포 유태인 과장으로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열차로 폴란드 수용소로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평소 자신이 500만 명의 유대인을 이송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는 2차 대전 후에도 신분 세탁을 통해 도주하여 살다가 이스라엘의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면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라는 유대인 학자의 관찰에 의하면 그는 매우 평범하고 오히려 나약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그의 보고서에 서술했다.

 

도저히 5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낼 만한 악마라고 느낄 수 있는 면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악마가 지녀야 할 특별한 점을 기대했던 고정관념이 뒤흔들리는 사건이었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의 관찰에 의하면 그는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정의했다. 즉 악을 의도하지 않으면서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에 악의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여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잔인한 악행이 그것에 어울릴만한 괴물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추고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빙글빙글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는 하급관리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세월이 지나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 법한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적 판단이 어떻게 작동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분업이라고 분석했다. , 유대인의 명부 작성, 검거, 구류, 분류, 이송, 처형 등의 모든 과정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분담하도록 기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함으로써 단위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책임을 전가하기 수월한 환경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나는 장부만 작성했을 뿐이다. 그들의 가스실 처형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라고 발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업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악의 거미줄에 충실하게 봉사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지, 그는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복잡한 시스템의 다양한 사람들 중 몇 명이라도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의 소리에 따라 시스템을 멈춰 세웠다면 500만 명의 유대인 중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을 것이다.

 

오늘날도 공기업과 사기업 그리고 학교 등과 같은 공공기관, 행정, 사법, 입법부와 시민단체 등에서 유사한 형태의 크고 작은 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최종 책임자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동조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공무원 윤리규정에 의하면 공무원이 관련 동료나 상관의 비리를 알게 되었을 때, 즉각 신고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처벌 사유가 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내부 고발자에 대한 시선은 의외로 차갑고 부정적이다. 물론 이지문 중위처럼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지만, 지금은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으로까지 명예를 회복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드물고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올가미에 걸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회는 아닌 것을 보고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이라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시민의 불복종에 의해 정권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민주성과 공정성과 투명성이 더 좋아졌다고 자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심선언을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힘을 잃고 있는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주장이 왜 이렇게 공허하게 들리는 것일까?

 

한 국가에서 두 개의 법이 작동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대명천지에 당당하게 실정법을 부정하는 대규모 집회가 가능한 나라가 정상인가?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수 만 명, 수 십 만 명이 외치면 누구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백주 대낮에 몇 개월씩 이런 일이 반복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작동되던 사회원로, 종교지도자 등의 중재도 멈춰선지 오래다. 평범한 국민들은 누굴 믿고 따라야 할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히틀러가 탄생했던 배경이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와 같은 환경이었다. 어느 순간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전체주의 국가로 흘러갈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져서 등골이 오싹하다.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엄청난 보복과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양 진영에 팽만해 있다. 승리하기만 하면 모든 불법도 사면될 수 있다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고 있다.

 

거대 권력들의 사생결판 시스템에 평범한 수많은 민초들이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손에 쥐고부역을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과거보다 더 못한 국가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정치인들의 책임도 크지만,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의 책임이 몇 배는 더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내가 선호하는 특정 언론이나 SNS, 유튜브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실체를 정확히 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마약처럼 중독된 과거의 가치관에서 벗어나기는 어마무시하게 힘들 것이다. 이를 악물고 과정을 견뎌내야, 내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정화시켜 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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