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악의 20대 국회와 분열된 국민
우리의 경제력은 중진국 수준을 넘어섰지만, 정신과 문화의 수준은 여전히 20세기 초에 머물러 있다. 한글 창제 이후 주체적 언어를 통해 사상과 철학의 독립을 선택하는 대신, 대국(大國)으로 떠받들던 중국의 아류(亞流)로 머무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던 양반들의 나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을 주체로 우뚝 세우는 대신, 더 강하고 힘센 무리(진영)에 붙어서 왕왕거리며 짖어대는 동네 강아지를 연상케 한다. 그래도 중국은 아편 전쟁 이후 서양을 배우고 이기려는 뼈아픈 성찰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극일(克日)을 향한 피나는 반성과 대책이 없었다. 판을 갈아엎으려는 혁명의 몸부림이 싹을 틔우지도 못했다.
촛불혁명을 들먹이는 자들도 결국 그 열매에만 관심이 있을 뿐,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 탄생하려는 몸부림을 시작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예외라는 착각 속에 머물고 있다. 이제 격랑의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복판에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내분으로 파선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중국도 과감하게 자신들의 역사와 사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만약 어떤 법이 통과되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면, 우리는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런 법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고는 어떤 법도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진인이후유진지(有眞人而後有眞知), 현재 우리들은 정치인들이 짖어대는 곳에서, 함께 짖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는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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