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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기사입력  2019/09/23 [10:28] 최종편집   

 

▲본지 권영출 회장


(권영출 칼럼)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외채 상환 불능의 상태가 되고, 192312월에 이르러서 1달러가 4조 마르크로 폭등하는 등 초인플레이션으로 중산층은 분노하고 절망과 자포자기에 빠지게 된다. 이때 히틀러는 대중들의 이 분노를 금융자본주의 중심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집중시킨다. 이미 대중들에게 팽배해 있던 반유대주의와 결합시켜서, 이들이 게르만 민족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선전 선동했다. 그는 대중의 분노와 절망의 분출구로 유대인을 지목하는 한편,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생학을 근거로 제시한다. 즉 우수한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열등한 유대인과 피가 섞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선동은 경제위기로 절망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으로 비춰졌다.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할 수 있는 유대인이라는 대상이 생겼기에, 거리낌 없이 유대인을 폭행하고 유대인 상점에서 물건을 탈취해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또한 게르만은 우수한 인종이라는 주장은 무너진 그들의 자존감을 치켜 세워주는 청량제였다. 이미 정치적으로 우생학에 근거하여 게르만은 우수한 민족이고, 유대인은 열등하다고 규정하는 순간 이중의 잣대가 합법화된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을 대할 때, 자신들에게 적용하던 기준과 원칙 그리고 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어진 것이다. 마치 미국에서 흑인들이 노예해방으로 자유인이 되었지만, 백인 전용 레스토랑에 출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한 국가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준과 법이 적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일 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파시즘은 싹트기 시작해서, 철학자의 나라라는 칭호가 무색한 전체주의 국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신과 자기가 속한 정당 이익을 위해, 대중의 분노와 절망을 어떻게 이용할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교묘한 방식으로 선전하고 선동한다. ‘우리는 우수한 집단이다. 우리는 정의롭다.’ 그러나 저쪽에 속한 집단은 열등하고, 부패한 집단이다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그들에게 폭행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부추긴다. 실재로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주고받는 댓글의 수준은 유대인 학살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사이버 공간일 뿐, 현실화된다면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단지 우리 쪽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누군가를 그토록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합법성과 함께 권력이 주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장 문명화된 21세기에 또 다른 파시즘과 히틀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인터넷의 댓글을 보노라면 섬뜩함이 느껴진다. 독일인에게 적용되는 법과 인권이 유대인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히틀러의 주장이 우리 중에는 없을까? 이미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우리 역시 파시즘의 초기에 진입했다는 반증이다. 훌륭한 인격과 인품, 더 나은 인류의 삶을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유대인들과 순진한 어린아이들조차 인종하나 때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다.

 

어떻게 사람을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려고 하는가? 이런 사회분위기야 말로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침을 흘리면서 좋아하는 환경인 것이다. 수천만의 국민을 단지 2가지 잣대로 구별할 수 있다니, 정치인들에겐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 몫을 하면서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집단이 언론이다. 그들이야 말로 기회만 되면 진보와 보수라는 말로 양분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다양성이 존중되고 보장되지 못할 때, 그 국가나 문명은 멸종했다. 가장 위험한 파시즘으로 나가는 전조 중에 하나는 사실과 진실이 드러나도, 결코 자신들의 이념이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짜 뉴스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에서 판결이 나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면 판결 자체를 부정한다.’ 이런 현상이 어떤 정당 입장에서 좋을지 모르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결코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왜 정치인들이 나쁜가? 그들도 국가 전체로 볼 때, 커다란 손해인 줄 알지만, 절대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편에 유리할 때만 고치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대물림되면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이 고스란히 고통과 불행을 떠안게 된다. 독일 철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어떻게 이런 위대한 철학자의 나라에서 히틀러 같은 독재자와 거기에 동조하는 국민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서, ‘오늘날에도 파시즘이 등장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국가에 하나의 법이 있어서,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믿음은 평범한 국민들의 환상이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그 법을 부정하고 지킬 필요가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무리들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우리만이 정의롭고, 우수한 집단이라는 사상과 가치에 중독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죽창을 들고, 총과 칼을 들 수 있게 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 모든 아이들은 커서 되고 싶은 사람모택동 주석을 보위하는 계급 혁명전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은 모택동 주석의 혁명사상을 보위하는홍위병이 되어 자신의 부모와 스승을 계급의 적으로 고발하거나 군중 속으로 끌어내 뺨을 때리고, 오물을 끼얹고, 머리를 깎았다. 마오 주석은 혁명 중에 있었던 모든 불법은 무죄라고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는 국민이 있을까? 정치인들에겐 희망이 없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평범한 국민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속한 정당이 정권을 쟁취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 시대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을까이다. 눈을 부릅뜨고, 검증하고 또 검증하지 않으면 이용당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정치인들의 앞잡이가 되려고, 줄을 서는 국민들이 넘쳐나고 있다. 거수기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을 욕하기에 앞서 나는 특정 정치인의 거수기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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