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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 부친다
-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다 -
기사입력  2019/04/12 [15:31] 최종편집   

 

▲진진형 초대민선 구청장


(명사칼럼)

민족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 부친다

-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다 -

 

 

금년 3.15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서울에서는 물론 지방에서도 뜻 깊은 기념행사가 진행되었고 이어서 문화예술단체에서는 안중근 열사와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기념음악회와 오페라 등이 공연되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안중근 열사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윤동주 시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검토하기로 하겠다. 필자는 현재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부회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에 대한 한···일 국제심포지엄을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성대히 개최한바 있는데 관악구에 윤동주 문학관을 신설할 목적으로 실행한 바 있다.

 

이 심포지움에 참여한 한···4개국의 대표자와 논제는 한국(중앙대학 임한영교수: 향수, 고향상실의 한) 중국(연변대학 허희문교수: 다시 본 윤동주 문학가치) 미국(에리카대학 윤희한 교수: 미국에서 본 윤동주 시인) 일본(와세다대학 오무라마쓰오: 죽는 날과 사는 날까지의 의미) 등이다.

 

이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 중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과 당시 크게 논쟁이 되었던 순수문학 및 조국과 사회에 대한 참여문학을 검토코자 한다.

 

윤동주시인은 19171220일에 중국지린성(吉林省) 용정시(龍井市) 명동촌(明洞村)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동주 시인은 1925년 당시 북간도의 대표적인 민족학교인 명동소학교에 입학한 후 19324월에는 은진중학에 진학하여 역사의식과 항일독립의지를 고취한 바 있으며 1935년에는 평양숭실학교에 편입하였다.

 

그 후 19361월에 숭실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하여 무기한 휴교되기까지 약 7개월간 활발하게 시작활동에 전력하였다. 19382월에 연회전문학교에 입학할 당시 참담한 민족의 현실을 목도한 윤 시인은 지식인으로서 고뇌와 갈등을 느끼고 1년 이상 절필하기도 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졸업을 앞둔 194111월에 작품 18편을 골라 서시라는 이름을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출판하고자 했으나 살벌한 전쟁말기 분위기 때문에 미루고 그의 원고 1부를 그가 체포되기 전에 정병욱 친구에 넘겨주었다. 그동안 비밀리에 보관해왔던 시집 서시는 윤동주 시인이 순국하고 민족이 해방된 뒤인 1948년에야 를 출간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1942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꼬의 릿교(立敎)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10월에 교토(京都)의 동지사(同知社)대학으로 전학한 후 조선인 유학생과 함께 우리 문화를 그리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법을 그의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모색하다가 19437월에 이른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체포되었다. 그 뒤 19443월에 일본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후꾸오과((福岡)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그의 고종 사촌인 송몽규도 2년형의 선고를 받고 함께 투옥되었다.

 

윤동주 시인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결국 19452168.15광복을 4개월을 남겨 놓은 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그해 3월초에 송몽규의 통보를 받고 부친 윤영석에 의하여 운구한 후 고향인 용정의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부친의 사망으로 묘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일본의 와세다 대학교수 오무라 마쓰오’(국제심포지움 참석) 부부에 의해 묘지가 발견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상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천신만고 끝에 출간된 윤동주 시인의 대표적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문학작품으로도 훌륭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던 순수문학과 조국 및 사회 참여문학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당시 순수문학 평론가인 조인현은 그의 저서 문학과 사상에서 정치, 경제, 사회, 사상도 더군다나 경제현상은 문학이 될 수 없고, 오직 형이상학적 관념만이 문학사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문학이 특정 국가나 사회의 프로파간다나 이데올로기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고 자기 가치관을 주장하는 앙가주망이나 목적문학을 주장하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19458.15 해방 이후 좌우익간의 극한투쟁에서 당시 순수문학가인 김동리, 조인현, 황순원 등이 좌파 이데오로기 문학가인 김동석(월북작가) 등을 공격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보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위와 같이 순수문학과 목적문학 간의 치열한 논쟁에 대하여 윤동주 문학사상이 종지부를 찍고 그 뒤 양 진영 간의 공존을 실현하게 된 것은 한민족 문학사에 큰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이 최초 수상 작품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30여 작품이 탄생되었는데 이들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순수문학 작품보다는 하나같이 그들 국가들이 입국과정에서 또는 조국의 누란의 위기에서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한 공적은 실로 막중하다고 생각하며 예를 들면 타고르, 헤밍웨이, 알베르 까뮈 , 펄벅, 가오싱젠 등을 들 수 있다.

 

만약 윤동주 시인이 잔인무도한 일제와 싸워 끝까지 조국독립과 사랑하는 국민을 위한 정신을 담은 행동문학의 꽃을 핀 작품을 살아서 계속 발표했다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을 것인데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점에 대하여는 많은 내외 전문가들도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일 국제심포지엄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개최한 것은 윤동주 문학사상을 이어 받는 후배 작가들의 양성도 중요한 목적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목적은 관악구에 기왕의 서정주 문학관과 같이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어 적극 지원한다면 관악구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원대한 목적을 갖고 시작했었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무관심과 비협조 그리고 예산문제로 망설이고 있는 동안 종로구에서 먼저 세검정에 윤동주 문학관을 개관함으로써 필자의 꿈은 그만 깨지고 말아 몹시 아쉽게 생각한다. 필자는 구청장 재직 당시 한민족연구소 이윤기 박사와 같이 중국 용정시 명동에 있는 멸실되고 없어진 윤동주 생가를 복권한 후 매년 8.15 광복 기념일에는 생가를 들린 후 윤동주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첨언하면서 이만 줄인다.

 

진진형 경제학박사/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부회장·초대민선관악구청장

재창간 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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