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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의 사변둥이
어르신자서전 : 2017년도 제작 <어사>의 저자 서홍덕 님(1부)
기사입력  2018/08/13 [19:27] 최종편집   

 

▲마을입구 들만당 밭에서 어머님과 손자 서상욱

어르신자서전 : 2017년도 제작 <어사>의 저자 서홍덕 님(1)

경상북도 고령군의 사변둥이

 

내가 태어난 곳은 낙동강변 시골마을인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동 161번지이다. 산 밑에는 개진초등학교와 100여호의 농가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약 60%이상이 서가들인 서씨 집성촌이었다. 동네의 맨 윗집은 할아버지가 사시는 종가집이고 그 아래 집은 둘째 큰아버지 식구들이 사셨으며 그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우리 집이고 그 옆집은 막내 삼촌께서 사셨다.

마을 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 들녘이 있고 들녘 넘어 낙동강이 구비 구비 흐르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이 들녘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면서도 서로 아끼고 정을 나누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동네였다.

나는 한국 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음력 528(양력생일 715) 고향마을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서 21일째 되는 삼칠날 무렵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손자들을 마을 뒷산 꼭대기쯤에 있는 큰 바위굴로 피신을 시켰다. 인민군들이 어느새 우리 마을근처에 까지 쳐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당시 상황을 늘 이렇게 회고하셨다.

전쟁은 자꾸 심해지고, 농사는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너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젖이 나오지 않아 너를 잘 먹이지 못해 많이도 울었단다. 또한 피신한 굴이 너무 좁아서 많은 식구들이 기거하기가 어려웠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너를 안고 졸다가 떨어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달 전쟁도 무서운데 몇 년 동안 전쟁을 했고 너의 아버지와 삼촌은 징병이 되어 군에 가버렸으니 너와 내가 얼마가 고생이 많았겠니?”

나는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년기를 보냈다. 이 시절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참화는 동네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가난과 헐벗음에 짓눌리게 만들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내가 태어난 오사동에서 태어나셔서 같이 결혼을 하시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사셨다. 아버님은 198947일에 소천하셨고, 어머님은 2017년 현재 88세로 아직도 그곳에서 혼자 잘 지내고 계신다. 나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는데 특히 소먹이는 일이 나의 중요한 일이 되면서 점점 성장하여 우리 동네에 있는 개진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나는 우리 동네 또래들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 소를 산 중턱까지 몰고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풀어주고 내려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이후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거들다 다시 산으로 가서 아침에 풀어놓은 소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을 반복하였다.

아마 그때 우리 반 학생은 한 100여명 정도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한반에 20여명 정도라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우리 반 급우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느라 제대로 공부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1945년 정부 수립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하던 때였고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숭배하였던 것 같다. 그런 시절에 선생님께서는 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외워 부르면 일찍 집에 보내주었고 외우지 못하면 늦게까지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다른 또래들 보다 머리가 좀 좋았는지 이승만대통령 찬양가를 잘 불러 일찍 하교해서 부모님을 도울 수 있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거의 기억을 못하지만 마지막 한 소절이 생각난다. “... 우리 대통령 리대통령 만수무강 하세요.”

그 후 3.15 부정선거가 터지면서 4.19 혁명이 발발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현대사의 격변이 일어났다. 이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월이 이어졌다. 이런 혼란스러운 세월 속에서도 농사꾼인 우리 아버님은 오직 묵묵히 땡벌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다. 후에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우리 아버님의 별명이 땡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을 땡벌같이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시는 분으로 기억한다.

▲할아버니와 기념사진


어머님은 자식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아버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우리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희생하셨다. 두 분은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농지를 조금씩 사기도 하여 형편이 나아져 시골 동내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사셨다.


나는 서당 훈장님이신 할아버지를 둔 덕분에 너댓살 쯤에는 천자문을 제법 많이 암기하였다. 할머니께서는 이런 나를 신기한 눈으로 보시고 기특해 하시면서 동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를 데려가 형들도 잘 읽지 못하는 천자문을 읽도록 하였다. 그런 나를 보면서 동네 어른들은 우리 동네에 천재가 났다고 하시며 많이 칭찬을 하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성실하면서 교육에 열정을 갖고 계신 부모님 덕분에 초등학교 6년 동안 3일밖에 결석을 하지 않아 6년 정근상을 탔고 6년 내내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다.

6학년이 끝나갈 즈음 담임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을 찾아 오셔서 홍덕이는 공부를 잘 하니 대구로 중학교를 보내서 공부를 시키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가장으로서 현실을 고려하여 내가 자전거(그 당시에는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자전거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대단한 귀중품이었음)를 한 대 사 줄 테니 8km정도 떨어진 현풍중학교로 진학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내가 더 열심히 농사를 지을 테니 우리 아들을 꼭 대구로 보내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나는 대구로 유학을 가는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갈 때에는 지금처럼 소위 뺑뺑이 돌리는 추첨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원서를 내고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갈 수 있었는데 나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영남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에는 대구 시외버스가 고령의 우리 마을까지는 가지 않아서 고령가는 차를 타고 성산(일명 어실)에서 내려 시간 반 정도 산을 넘어 가야 우리 동네에 갈 수 있었다.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 사회적으로 가난과 함께 유년기를 보낸 소위 사변둥이들은 늘 입시지옥에서 살아야만 했다. 중학교 3년 동안 공부를 잘해서 고등학교는 1차로 대구의 사립 명문고인 계성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계성고등학교는 19061015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아담스에 의해 영남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내가 재학 중에 6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고 2017년 현재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훈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간단한 예배를 먼저 드리고 다음으로 일요일에 교회를 갔는지 여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안 나간 학생들에게는 꼭 교회에 나가도록 권유하였다.

내가 고3이 되던 해에 대입 예비고사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다. 이것이 이후 학력고사-수학능력시험 등으로 변화하게 된다. 나는 매일 밤늦게까지 예비고사 준비를 하였다.

[출처. 어사, 서홍덕 저, 희망사업단, 서울 2018]

 

<편집자 주>

이번호부터 2017년도 어르신 자서전 저자 중 한분인 서홍덕님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서홍덕님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경국 고령군에서 태어나서 대학 졸업후 공직에 진출, 감사원에서 현대판 암행어사로서의 삶을 살고 퇴직하신 분이십니다.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거치면서 오늘날 청렴하고 투명한 공직사회가 되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유명종/ 희망사업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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