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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광산도시 현지회사에 주방일로 취업하다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고독한 오지의 한국인>의 저자 박상호 님(9부)
기사입력  2018/04/06 [14:55] 최종편집   

 

▲호주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고독한 오지의 한국인>의 저자 박상호 님(9)

호주 광산도시 현지회사에 주방일로 취업하다

 

퍼스(Perth)는 호주 서남쪽에 있는 서부 호주의 중심도시였다. 호주의 서북쪽 필바라 지역에는 광산이 많았다. 철광석을 아시아와 유럽, 남미로 수송하는 주요 항구였던 Port Headland, 산 전체가 철광석으로 구성된 Mt. newman 그 외에도 Dampier, Parabudoo, Cliff river , Saygap 등이 광업 관련 도시였다. 호주는 국토가 너무도 크고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수백 년간 자원을 팔아도 될 만큼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문제는 호주 개발 역사가 짧고 인구가 부족하다는 것에 있었다.

호주 서북쪽 지역은 제대로 된 도시가 없고 오직 광산 관련 기업과 유관 기관 인력과 그 가족 등이 전부였기 때문에 늘 광산은 인력이 부족했다. 퍼스에서 북쪽으로 1300마일이 떨어진 곳에 있는 Mt. Newman이란 철광회사에서 철도를 관리하는 라인캠프에 음식을 제공하는 푼브라더스라는 중국계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뉴먼은 철광석을 채취하여 수출하는 회사인데 Mt. Newman이라는 산 전체가 철광산이었고 회사 이름도 그 산이름을 따서 Mt. Newman이라 하였다.

라인캠프에서 일할 때는 푼 브라더라는 Poon brother라는 중국계 회사였는데 케이터링 회사였다. 처음에는 키친핸드(Kitchen hand)로 주방보조를 했다가 이후 브랙퍼스트 쿡(Breakfast cook)을 했다. 호주사람들 아침식사가 별거 아니다. 빵에 베이컨 굽고 계란요리, 오트밀과 야채 스프를 만드는 것인데 내가 주방일 하다 자리가 비게 되어 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영주권 나오기 전까지 근무했다.

호주의 주된 철광석 이름은 마리만바라고 하는데 누런색의 광석이었다. 철광석은 순도를 의미하는 퓨리티(Purity)가 있다. 철광석 1kg을 용해하면 철이 몇 %를 나오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남미(南美)산 철광석은 순도가 50% 정도인데 호주산은 거의 98%가 나왔다. 한마디로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철광석이 그냥 노천 산에 수억만 톤이 쌓여있다. 엄청나다고 할 수 밖에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광산의 지하 200m 아래로는 물이 흐른다.

철광산에서 광석을 셔블(Shovel)로 뜨면 200톤을 싣는데 한번에 200톤짜리 트럭에 싣는다. 우리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200톤짜리 트럭을 홀팩(Holepak)이라고 한다. 홀팩 1대가 200만불 정도 되었다. 광석 수송을 위한 특수 차였다. 차가 얼마나 큰지 타이어가 지름이 3미터가 넘었다. 타이어 한 짝이 당시 15,000불이었으니 1년 치 봉급이 될 정도였다. 엄청난 고가의 장비였다. 워낙 대규모로 하다 보니 기계화가 필수였다. 광산에는 사용연한이 다한 홀팩 타이어를 쌓아 놓았다.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서 빗물이 고인 타이어에 놓으면 6개월도 살았다.

철길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캠프를 Line camp라고 했다. 그곳에는 캠프 매니저(책임자), 청소부, 요리사, 보조요리사, 설거지 담당, 목수, 전기공 등 수명이 각기 직무에 따라 거주하였다. 라인캠프에서는 돈을 벌기만 하고 쓸 수는 없었다. 캠프 외에 전혀 가게도 인가도 없으니 돈 쓸 곳이 한마디로 전혀없는 곳이었다. 숙식을 제공받는 것은 기본이고 여가 활동에 필요한 물품이라 해봤자 편지지외 봉투 등이 다였는데 그것도 그냥 주었다. 그리고 보급품이 오는 날에는 내 역할이 아닌데 보급품을 날라주면 맥주도 서비스로 주었다. 식당엔 주정(Cooking Wine(요리용 술))이 있어 알콜도 좀 섭취할 수 있었다. 뉴먼 회사 라인 캠프 인력에 대한 수당 체계는 8시간까지는 시급이 280센트였고 시간외는 누진수당이 붙어 3~4불을 받았다. 그리고 일요일이나 국경일은 시급의 3~4배를 주었다.

하루에 식사를 세 번 하는데 그것도 앉아서 먹으면 휴식으로 치고 일어서서 식당에서 서서 먹으면 근무시간으로 쳐주었다. 참으로 특이한 셈법이었으나 나는 식사를 앉아서 먹을 이유가 없었다. 밥 먹는 시간도 일당으로 쳐준다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일한 것으로 치면 하루에 27시간 까지 일당을 받을 수 있었는데 거의 2주 정도 일한 효과가 있었다. 거기서 1년을 일하면 시드니에서 4~5년 일한 것만큼 돈을 벌수가 있었다. 또한 환자가 발생하면 회사에서 경비행기가 온다. 그러니 숙식에 의료비까지 하나도 돈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전혀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였다.

하루는 뉴먼에서 육영수 여사 서거사실을 신문으로 보았는데 일본인들이 죽였다고 했다. 당시 뉴먼에는 일본에서 철광석을 수입하기 위해 광산에 파견되어 있는 일본 회사 사람들을 위한 사무실이 있었다. 이에 나는 다짜고짜 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난리를 치고 왔다. 그 다음날 일본인들이 들어와 똑같이 난리를 치며 한국인이 죽였다고 했다. 내용을 똑바로 알라고 하였던 일이 있었다.

이후 나는 Port hedland로 전출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도 사택을 받았다. 장남 준식은 뉴먼에 있을 때 78년에 출생하였다. 준식이를 낳은 지 한 1년 지나 포트헤들랜드로 가서 둘째 준수를 83년에 낳았다. 나는 시민권자가 아니어도 그 나라에서 태어나면 무조건 시민권을 주었다. 그렇게 부부가 현지에서 아이를 낳으면 이후 영주권을 주고 시민권도 받게 하였다. 내가 천주교 신자였는데 뉴먼 성당에서 일요일이면 미사 때 복사를 하였다. 당시 광산에 마인매니저도 천주교 신자였다. 뉴먼에서는 내가 기술자를 돕는 헬퍼로 근무하였다.

그때 나는 용접 보조였고 용접기술자가 유고슬라비아 사람이었는데 매번 나를 고달프게 하고 인종차별을 많이 하였다. 그 차별을 견디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당시는 회사 규정상 직원 간에 싸우면 무조건 둘 다 해고였다. 하지만 지속적인 차별로 인해 인내의 한계가 와서 그만두기로 작정을 하고 언젠가 그 친구를 한번 들이 받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일을 보러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내가 거기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싸움이 붙었다. 그래서 결국 징계를 받아 그만두게 될 상황에 처했다. 그 후 내가 성당에 가서 마인매니저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퍼스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그 사람이 이유를 묻기에 그간의 일을 이야기 했다.

내가 그동안 잘 도와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다른 구제할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하며 기다려 보라고 하였다. 이에 그 사람이 나를 회사 내 대학교 견습생(apprenticeship)으로 들어가도록 특전을 주어 무시험으로 4년제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학은 퍼스에 있는 웸블리기술대학(Wembley technical College)이었다. 매주 월요일은 학교를 가고 화~금요일은 실습을 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1개월씩은 퍼스에서 공부를 하였다. 이에 퍼스에 있는 웸블리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1회 학교에서 공부하고 4일은 일했다. 지금으로 치면 한국정부에서 중소기업 재직자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일학습병행제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박상호,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 희망사업단>

다음 호에 계속
재창간 3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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