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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호주, 살길을 찾다... 호주 이민역사의 시발점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의 저자 박사호 님(8부)
기사입력  2018/03/26 [15:12] 최종편집   

 

▲     © 운영자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의 저자 박사호 님(8)

낯선 호주, 살길을 찾다... 호주 이민역사의 시발점

 

사이공에서 싱가폴로 갈 때는 TWA항공을 타고 싱가폴에서 Qantas항공(호주)을 타고 퍼스로 왔다. 당시 서호주의 주요 도시인 퍼스(Perth)를 경유해서 뉴질랜드 웰링턴(Wellington)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퍼스에 내려서 호주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를 경유해서 다른 곳으로 가는 항공권을 끊으면 경유 비자를 발급해 주었는데 그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40여불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퍼스에서 내려서 불법체류를 결행할 심산이었다. 이에 사이공에서 퍼스를 경유해서 뉴질랜드 웰링턴으로 가는 항공 티켓을 끊고 낯선 땅 호주로 출발하였다. 평생 북반구에만 살던 내가 지구의 또 다른 반쪽인 남반구로 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영어권 국가로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복잡한 심경으로 호주로 갔다. 그렇게 낯선 땅 호주에 도착하여 퍼스 공항에 내렸다. 날씨는 베트남과는 또 다른 쾌적하고 좋았다.

 

Yellow 카드는 일종의 위생카드이다. 당시 옐로우 카드라고 예방접종을 받아야 통과가 되었다. 이에 여기에 예방접종 기록을 남겨야 했다. 아니면 비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베트남에서 접종하고 왔기 때문에 통과될 수 있었는데 담당 직원이 내 카드를 자세히 보지 않고 빈칸을 보고 나를 접종라인으로 가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시간이 걸려서 한쪽에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 차례가 되어 직원 한명이 나에게 팔을 걷으라고 했다. 그런데 예방접종을 두 번 맞으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에게 예방접종을 하였다고 하니 왜 여기 있냐고 하면서 비자 주는 줄로 옮겨가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와 일행은 잠시 분리되게 되었다. 나는 엉겁결에 다른 팀이 선 줄에 포함되었다. 다른 사람은 다 나갔는데 하얗게 줄쳐놓은 곳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니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이 3,40명이 서있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연예인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1년간 호주 전역을 다니면서 호주인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공연단이었다. 호주 대륙이 너무 넓어서 3개월 마다 비자를 줄 수 없는 특수 관광객이라 1년짜리 비자를 주었다. 그런데 그 줄에 있는 호주 직원이 단체 비자라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면서 나도 엉겁결에 1년 비자를 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3개월 받고, 나만 1년 비자를 받았다. 지금도 관광비자는 3개월이다. 한국 사람은 1년 받은 경우가 없는데 나만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현지 직원들이 의아해 했지만 일단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호주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     © 운영자


우리 일행은 4명이었는데 다들 영어를 조금은 했는데 비교적 내가 젊고 영어 실력이 좀 더 좋아서 리더를 하였다. 우선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퍼스 시내에서 가장 싼 호텔로 데려달라고 했다. 시내까지 택시로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눈치를 챘는지 퍼스 YMCA 앞으로 데려갔다. 거기 숙박비가 하루에 7.5불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비싸다고 하자 더 싼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미 시내가 아닌 약간 외곽지역으로 나가면서 허름한 여관 같은 곳에 세워줬는데 명칭은 The Britania hotel이었다. 거기는 시내 YMCA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중충한 곳이었는데 하루 3불을 받았다. 이에 좋다고 하고 50센트씩 걷어서 2불을 운전사에게 주었다. 그러자 운전사는 우리가 자꾸 싼 곳으로 가자고 하니 돈이 없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이에 그가 우리에게 정중하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손님, 여행경비가 충분치 않으신 것 같으니 괜찮다면 팁을 받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하였다. 그리고 낯선 곳에 온 것 같으니 명함을 주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고마운 택시 기사에게 아무 일이나 좋으니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알겠다고 하며 이틀정도 있다가 우리에게 왔다.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며 세차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세차 요원이 십여 명 정도 일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동양인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그 택시기사는 정말이지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준 천사와도 같았다. 그렇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우리는 낯선 땅 호주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호주는 세차장 일도 체계가 잡혀있었다. 자동차 외부세차를 하는 순서가 있는데 내가 맡았던 역할은 자동차 엔진을 100도 넘는 고압스팀으로 청소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것에도 순서가 있지만 맡은 일에 따라 급여체계는 다 달랐다. 예를 들면 자동차 실내 청소는 10불이었는데 실내 청소는 수월한 편이라 주로 여자에게 배당되었다. 외부청소는 3불을 주었다. 우리가 갔던 1973년도 당시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영국령이었던 호주는 내가 오기 직전에는 파운드화를 썼다가 달러로 바뀐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호주는 월급 개념이 없이 그때나 지금이나 주급으로 정산한다. 세차장에서 하루 종일 세차를 하면 일당이 약 15불 정도 되었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주급으로 70불을 받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이지 이젠 살았다는 안도와 감사의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로 월남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호주로 많이 왔는데 우리가 선발대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월남 PA&E에서 중위 계급을 가진 신분증이 있었는데 버리지 않고 가지고 왔다. 월남에 진출한 미국 회사에서는 민간인들인 직원들에게도 군인 계급을 주었다. 이는 현지에서 하는 일이 군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나이가 어리고 사병 출신이라 중위 계급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서 그 신분증을 가져왔는데 호주에서는 미국 신분증이 있으면 자동차 면허를 그냥 주었다. 덕분에 나는 호주에서 바로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살다보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무렵 월남에서 호주로 한국인들이 2~300명이 들어왔는데 그들이 호주 이민역사의 시발점이다. 이들이 지금 한인 사회 14만 명을 이룬 씨앗이었다.

퍼스에서 세차장 일을 하고, 저렴한 숙소에 묵으면서 좀 안정감을 되찾고 나니 그 다음 단계의 일을 모색해야 할 욕구가 생겨났다. 언제까지나 단기 일용직으로 근무할 수는 없었다. 이에 현지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니 광산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이에 가서 상담차 갔는데 상담을 해 보더니 즉석에서 취업이 되었다. 하청회사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받았다.

두 번째로 하늘이 나를 도운 순간이었다. 아무 연고 없는 낯선 땅에서 회사에 취직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비자도 관광 비자였고 어떤 신원 보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당시는 워낙 일이 부족하고 호주 정부에서도 외국계 회사나 작은 회사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일정부분 묵인하고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박상호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 희망사업단)

다음 호에 계속
재창간 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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