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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의 저자 박상호 님(7부)
베트남에서 미국행 좌절 .... 호주로 전환
기사입력  2018/03/09 [16:16] 최종편집   

 

▲베트남  참전용사들과 베트남 현지에서


어르신자서전: 2017년도 제작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의 저자 박상호 님(7)

베트남에서 미국행 좌절 .... 호주로 전환

 

베트남에서 미국계 회사를 다니며 정말 별천지를 경험한 나는 미국으로 가는 것이 꿈을 이루는 길이라 생각을 하고 적극적으로 미국행을 추진하였다. 내가 미국행을 결정한 이유는 미국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되어 한국에 있는 미8군으로 나오는 것이 나로선 최고의 금의환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미군이 된 사람들을 김치 G.I라 불렀다. 미군이 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신분 상승이라 생각을 하여 이를 동경한 것이다. 일단 미국으로 가려면 베트남이 아닌 홍콩으로 가야 했다. 당시 한국인이 미국에 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 했다. 나는 당시로서는 거금인 400불을 주고 방콕 미 대사관에서 복수비자를 발급 받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비자 받으려면 공관에서 경유지 추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내가 받은 비자가 야매로 돈 주고 받은 것이라서 경유지가 없었다. 이에 그 사람이 무효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혼자 독백으로 2천불이 필요한데 큰 일 났다고 중얼 거렸다. 나는 그저 혼잣말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갔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그 사람은 내 여권을 자기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그고 나갔다. 대사관은 점심시간이 2시간~2시간 반이 걸렸다. 나는 여권이 없으니 불안한 마음에 차 한잔만 마시고 기다리다 다시 그 사람에게 갔다.

점심을 먹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사람이 나에게 잘 생각했냐?”고 하였다. 그는 내가 2천불을 줄 용의가 있느냐는 뜻으로 물어 본 것인데 당시 나는 전혀 그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고 하며 근처에 있는 미 대사관에 전화해서 한국 대사관에서 경유하지 않은 비자를 발급했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미 대사관은 한국 대사관 옆에 있었다. 이에 나는 미국 대사관으로 그자와 함께 벤츠를 타고 갔다. 미국 대사관 비자 담당 영사가 미 대사관에서 비자에 캔슬 도장을 찍었다. 미국 직원은 한국대사관에서 원치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다음에 원하면 다시 신청하라고 했다. 내가 이 비자를 받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이 멍해지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하늘이 노래졌다.

 

미국 대사관을 나와서 한국 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대사관 앞에는 태국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길이 대사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태국 경찰의 총으로 향했다. 난 순간 저놈을 죽이고 나도 죽자.’라고 결심을 하였다. 태국 경찰이 총을 갖고 경비를 섰는데 내가 태국 경찰에 달려들어서 총을 뽑으려 하자 그 사람이 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현장에서 다투는 과정에서 옆에 있는 다른 경찰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나는 현장에서 붙잡혀서 곧바로 근처에 있는 태국경찰서로 이송되어 졸지에 살인 미수 용의자가 된 것이다. 태국 경찰 조사관이 나에게 경위를 물어보았다. 이에 내가 그 사람에게 그간의 일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내가 미국비자를 받았는데 저 사람이 취소시켜서 내가 저놈 죽이고 나도 죽이려 했다고 하였다. 이미 한국 대사관에서는 내가 태국경찰에 붙잡혀 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대사관에서 전화를 하고 내 신병을 인수하러 와서 풀려나 다시 대사관으로 갔다.

당시 나는 너무도 충격을 받아서 몸에 이상이 와서 고생하다 다시 방콕을 떠나 월남에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 안 간 이유는 못사는 한국에서 살기위한 경쟁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고 이미 외국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란에서 기술자를 모집했지만 가지 못했고 사우디는 모집 전이었다. 그러다 호주로 가는 길이 열리면서 호주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미군이 1972년에 완전철수하고 1973년에 한국군이 철수하자 한국 민간인들이 남았는데 돈들이 없었다. 당시 김진기라고 베트남에서 2~3만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매우 인색한 구두쇠였다. 그 사람은 가지 않고 호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41조로 구성하여 보내는 일을 하였다. 이에 나도 신청하여 4명으로 구성된 팀이 꾸려졌다. 이에 더 이상 베트남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몇몇의 동료들과 함께 호주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큰 전환이 이뤄지게 되었다.

 

호주는 이민국가이다. 1700년대 초기 캡틴쿡이란 영국 선장이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붙잡아 팔던 인신매매상이었다. 그는 현상수배자였는데 잡히면 단두대에 잡혀죽는 신세였다. 그 사람이 항해를 하다 도착 한 섬이 호주 대륙이었다. 그가 그 섬을 돌아보기 위해 여정을 나섰는데 섬이 어찌나 큰지 끝이 없었다. 이에 전체를 둘러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땅이었다. 탐험을 하여 호주 대륙 지도를 그렸다. 그는 귀국하여 그 땅을 빅토리아 영국여왕에게 바쳤다. 이에 영국정부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영국여왕은 그 사람을 사면시키고 작위를 주었다. 호주대륙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의 1/4을 영국 여왕에게 바쳤고 그곳 이름을 퀸슬랜드 라고 하여 여왕소유의 땅이 되었다. 그 안에 세계적인 휴양지 골드코스트가 있다. 퀸슬랜드는 여왕이 명령하여 세금을 거두지 말라고 하여 세금이 없었다.

엄청나게 넓은 땅을 발견하였지만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영국에서 가려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으니 가는데만 6개월이 걸릴 정도로 먼 곳이었다. 일반 영국시민들은 너무 멀어 갈 수가 없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영국 정부에서는 국내 죄수들을 강제로 보내서 인구를 채우고자 했다. 처음에는 죄수만 보냈는데 죄수의 거의 대다수가 남성이니 인구가 증가할 수가 없었다. 호주에는 애버리진이란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영국출신 죄수들이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들이 죄수들를 공격했다. 이에 간수들이 죄수들에게 무기를 주어 원주민을 물리치게 하였다. 공적이 등장함으로 인해 싸움이 중단되었다. 원주민들을 물리친 뒤에 죄수들이 간수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행하여 배를 타고 죄수들이 간수들을 오히려 볼모로 잡아서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호주는 무인도가 아니라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거주했던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전쟁이 있었지만 초기에는 이주민들이 수적으로 밀려 많이 죽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기와 장비가 우수한 이주민들이 점차 승기를 잡아가면서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시드니에 보면 2층으로 된 아파트에 망루가 있다. 초기에는 정착민들이 거기에 올라가 망을 보면서 원주민들이 쳐들어오면 경종을 울려서 경고를 하였다. 지금도 시드니에 보면 그 당시 지어진 공동주택들이 많이 있다. 땅은 넓었지만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밀집 대형으로 타운을 조성한 것이 아파트 등이 있는 이유이다. 초기 이주민들은 정착지 인근 땅에서 농사를 짓다 원주민들이 공격하면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방어전을 펼친 것이다. 지금은 이 공동주택들이 오래되어 철거되고 있다.
(박상호 고독한 오지의 한국인’, 희망사업단)

다음호에 계속
재창간 3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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