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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출근길에 "너 잘 만났다!"
기사입력  2017/10/13 [15:23] 최종편집   

 

▲유종필 구청장

(유종필의 관악소리)

걸어서 출근길에 "너 잘 만났다!"

 

걸어서 출근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뒤에서 툭 친다. “뒷모습이 구청장님 같기에 뛰어왔어요라며 숨을 헐떡인 채 애로사항을 말한다. 아예 시간 맞춰서 길목을 지키다가 민원사항을 말하는 분도 있다. 재활용정거장을 운영하는 분이 나를 붙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개선방안을 말한다. 지나가던 택시가 서서 인사를 해올 때도 있다. 때로는 내가 말을 걸기도 한다. 교통정리 하는 녹색어머니회 회원과 모범운전기사, 학교보안관, 잔재쓰레기를 치우는 도우미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넨다. 등굣길 중고생이 인사를 걸어올 때는 반갑기 그지없다. “나를 어떻게 알지?”라고 물으면 학교 행사 때, 축제 때, 신문에서 봤다등 제각각이다.

▲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


걸어서 출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선 걷는 것 자체가 좋다. 아내와 대화하는 것도 즐겁다. 주민을 만나 생생한 소리를 듣는 것은 유용하다. 운수 좋은 날은 동전을 줍기도 한다. 가끔 코스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도중에 구청 뒤 청룡산으로 들어갈 때도 많다.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가 지천에 널려 있고, 여름엔 녹음 속 매미 소리, 가을엔 낙엽 밟는 낭만이 그만이다. 청룡산의 사계절도 누릴 게 적지 않다.

일과 중에도 틈을 내어 동네 구석구석을 걷는다. 관악은 계획도시가 아니라 서울 중심부의 개발에 밀려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산등성이에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개발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인 곳도 있다. 밤골의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할머니의 꾸밈없는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철없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 햇빛이 부서진다. 지저분한 골목은 보기에 좋지는 않지만, 그것도 날 것 그대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동네 낮은 담장 너머 재래식 빨랫줄에 걸린 갓난아기의 앙증맞은 옷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도림천 산책길을 걷노라면 말을 건네 오는 주민들을 날이 갈수록 많이 마주친다. 운동시설에 대한 요구를 비롯하여 쓰레기 처리, 반려동물 문제, 벽화 관련 의견 등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난 초여름 동네를 거닐다 작은 공원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계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구청장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잘 만났다며 반색을 하시더니 햇볕을 가릴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며칠 뒤 들렀더니 그늘막이 생겼다며 감사인사를 하신다. 계절이 바뀌고 몇 달 뒤 다시 들러보았다. 반갑게 맞이하더니 구청장 오기만 기다렸다며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워달라고 하신다.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고 약속드리고 오는데 뒤에서 들리는 말씀. “멋쟁이 구청장님만 믿고 있을게.” 요즘은 할머니들도 애교 만점이다. ㅋㅋ

이런 일들이 걸어 다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차타고 쌩~ 지나가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다. 태초에 인간은 차를 타고 다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걷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같이 걸을 수는 있지만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스스로 자기 두 다리로 걸어야 한다. 그러면서 땅바닥의, 지구의 고동을 몸뚱아리로 느껴야 한다.

길은 걷는 자의 것. 걸어야 나의 길이 생긴다. 두 발로 걸으면서 회고하고, 반추하고, 사색하고, 상상하고, 영감을 얻어서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갈 수 있다. 걷는 것은 척추동물만의 특권이다. 척추가 없는 동물은 기거나 달라붙어서 이동한다. 혼자 걸으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고, 둘이 걸으면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내일 아침에도 아내와 함께 걸어서 출근해야겠다. 걸으면서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재창간 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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