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진이 주는 교훈
그동안 이웃 일본이 지진으로 공포와 재앙을 겪는 것을 보면서 ‘우린 지진 안전지대야’라는 자기 확신에 차있었다. 누가 언제부터 우리가 지진에서 안전한 나라라는 신념을 심어주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혹은 ‘진실’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경주의 지진으로 우리 국민이 겪는 트라우마는 재산피해가 아니라, 우리의 확신이 무너지면서 찾아온 ‘심리적 공황 상태’인 것이다. 일본이었다면 일상적인 지진의 강도라고 여겼을 진도에 크게 동요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신념이나 사실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클수록 당혹감도 커지는 법이다. 과거 천안함 사건 때만 해도 증권시장이 폭락했던 것은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외국인들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한국사람 중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비율은 극소수였다. 어쩌면 절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과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는 뉴스를 교통사고 정도의 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봐야 ‘결코 핵무기를 쏠 수 없다. 스스로 자멸하는 길인데, 김정은이 바보가 아니다’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김정은보다는 더 오래된 믿음인 ‘지진 안전지대’도 깨지는 판인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그동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징집되었던 것은 전쟁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일어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북한이 절대 핵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막연한 믿음으로 준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사드’에 반대할 수 있으나, 이번의 지진처럼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사드’보다 더 안전하고 완벽한 방호체계가 있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책임은 절대지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선거전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얼마나 떠들어댔는가? 지금 뭐가 달라졌는가? 국가흥망(國家興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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