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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묵시록
(안영혁의 힐링칼럼)
기사입력  2016/09/09 [15:30] 최종편집   

 

▲안영혁 목사


(안영혁의 힐링칼럼)

가을의 묵시록

 

2016년 가을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회가 있습니다. 8월의 더위가 혹심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룻밤 사이에 저녁이 선선해지면서 가을이 왔습니다. 짐작은 이렇습니다. 원래 날씨가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스스로의 현상들을 지켜내는 힘이 약해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내려 쪼이는 햇볕은 지구가 햇볕을 받아들이는 각도에 따라서 약해지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태양과 지구의 천문학적 관계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 우리는 어떻게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문학적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큰 질서를 말합니다. 그러니 이번 더위는 천문학적 요인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내의 변화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천수만의 물고기들이 수온이 높아져 죽어서 떠오른 것입니다. 바다 속의 어족들은 물의 온도가 섭씨 28도를 넘어서면 생물학적 한계에 도달한 것이므로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추이대로라면 내년은 더 더워진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물이 한 번 들어오면 쉽게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천수만 뿐만 아니라 바다의 다른 영역까지도 점점 더워지고 어족들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수온에 도달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수온이 높아 살 수 없는 지구에서 사람들은 과연 살아낼 수 있을까요? KBS에서 방송하는 동물의 왕국에서 코끼리가 살 수 없는 지구는 인간도 살 수 없다고 묵시록처럼 말하는 동물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 어족이 완전히 살 수 없게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바다의 일부가 비록 여름 한 철이지만 그랬다는 것은 그 현상이 점점 확장되고 많은 어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과장적으로 혹은 미래적으로 와서는 안 되는 미래지만 말해서 어족이 살 수 없는 바다를 가진 지구에서 인간은 살 수 있을까요? 불문가지입니다. 코끼리의 경우보다도 더 심각합니다.

 

대책이 무엇이 있을까요? ‘교토 의정서가 만들어진 이래도 인류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탄소 배출이 모든 기상 악화의 기본 원인이라고 보니까요. 바다의 수온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 수십 년 동안에는 중국이 경제 개발을 하느라 엄청난 화석연료를 사용하였습니다. 관심이 중국에까지만 미쳤었는데, 알고 보니 인도도 근래에는 경제 개발에 굉장히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도의 경제 발전은 기본적으로는 우수한 정보 기술 인력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이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 제조업 등 탄소 배출 산업을 늘려갈 것입니다. 이 두 나라만 해도 세계 인구의 절반인데, 말하자면 이들이 잘 살고 싶고, 잘 사는 것의 기본을 위해서는 탄소를 배출하게 되는 것인데, 이들을 막을 수 없다면 탄소 배출은 더 증가할 것이고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로 점점 빠져 들어갈 것입니다. 게다가 서구가 특히 미국이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과학 교사들이 아주 도덕적이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것을 알려야 할 텐데 누군가 그런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과학 교사들이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이런 사실과 그 사실의 의미를 가르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원래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도록 사회로부터 위임을 받은 사람은 정치가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생각해 보면 녹색당은 세력이 너무 미미합니다. 다른 당의 의원 가운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있겠지만 대세는 아닙니다. 어쩌면 전 국회의 차원에서 혹은 정권의 차원에서 정치가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법을 제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한 번 생각하기로 하고 할 수 있는 생각을 전개해 보았는데, 결국은 법의 문제에 다다르는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습니다. 법 중심의 세계는 모더니즘 시대였는데, 포스트모던 시대에 법 중심의 사회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말은 존재합니다. 비록 법 중심의 억압적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포스트모던 시대로 왔다 할지라도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보다 다른 개념의 법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갈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더니즘을 한 번 뒤집어 보고 난 뒤에 다시 모더니즘 시대의 거대서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대. 어쩌면 지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원래부터 못 가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모든 것을 절약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문제는 큰데 답은 미미하여 그냥 부끄러울 뿐입니다.

안영혁(예본교회목사, 총신대학교교수, 관악마을지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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