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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변화와 혁신 의지 어디로 갔나?
기사입력  2016/08/11 [12:16] 최종편집   
▲     © 운영자

 

 (시사칼럼)
담대한 변화와 혁신 의지 어디로 갔나?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를 각각 대선 후보로 결정하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속절없이 8년의 세월이 흘렀고, 오바마에 자극 받아 부풀어 올랐던 담대한 변화와 혁신의 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1961년생(당시 47세) 흑백 혼혈 버락오바마 상원의원이 2008년 여름 미국 민주당 후보로 선정되고, 11월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다.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정치 혁신과 세대교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We can do)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미국 정치의 역동성과 미국 사회의 저력에 놀랐다. 8년 전이지만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물론 선거과정에서 발산한 메시지와 이미지에 비해, 집권 8년 동안 변화시킨 제도와 정책은 의외로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담대한 변화, 혁신을 표방한 정부가 8년이라도 국가를 주도적으로 운영해 보았으나 결과가 의외로 신통치 않은 것이 문제라면, 한국은 담대한 변화, 혁신을 표방한 정치세력이 집권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운과 세력이 사실상 소멸하다시피 한 것이 문제다. 그 어디를 봐도 모순부조리는 한국이 훨씬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니 진짜 심각한 것이다.


2008년을 전후한 몇 년간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 공히 담대한 변화와 혁신을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단적으로 보수 쪽에서는 뉴라이트 운동과 선진화(산업화, 민주화의 업그레이드)운동이 있었다. 진보 쪽에서는 빌클린턴의 정치적, 이념적 배경이던 민주지도자회의(DLC), 토니블레어와 앤소니 기든스의 영국 노동당 혁신운동(신노동당과 제3의 길),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독일 사민당 혁신운동(신중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보수와 진보 진영 공히 사상, 이념, 비전, 정책, 리더십 혁신을 지향하는 젊은 혁신 그룹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움직임은 거의 사라졌다. 지난 8년 동안 나름의 사상, 이론, 방법 체계를 갖추고, 담대한 변화와 혁신을 꿈꾸던 세력이 국가나 유력 정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다수가 종적을 감추었거나, 잘 봐줘야 먼 ‘변방의 북소리’로 존재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되었을까?


2009년 이후 비교적 크고 담대한 경세담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복지국가 담론이 힘을 잃었다. 원래가 조세재정을 통한 2차 분배구조 개선 담론이라 한계가 명백한데다, 2014년 연말정산 파동 등 부담(세금)을 조금 늘리려는 시도들이 거센 반발을 사면서 기세가 꺾였다. 1차 분배구조 개선 담론이라 볼 수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도 재벌대기업의 과잉 착취(독식)론이라는 일면적 진실에 근거해 있고, 무엇보다도 재벌대기업의 상당수가 중국의 거센 도전으로 인해 생존의 기로에 서 있고, 국내 투자와 고용을 사릴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가 확인 되면서 경제 회생의 희망과 대안으로서 힘을 잃었다.

 

정치개혁 담론은 선거구제 획정 과정과 보수여당의 총선 공천 파동을 보고 아연실색해 버렸다. 기득권 조정의 엄청난 어려움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 담론은 NLL 포기시비와 녹취록 파동, 그리고 개성공단 전격 폐쇄로 한없이 후퇴해 버렸다. 규제, 공공, 금융, 재정, 노동, 교육, 지방자치분권 개혁 등도 지엽말단 갖고 싸우는 저열한 정쟁에 나름 절박한 문제의식이 방법이 묻혀 버렸다. 결과적으로 보수나 진보 공히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대한민국이 다시 뛸 수 있는지, 담대한 국가비전 자체가 실종 상태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도세력은 서양 문물과 세계정세를 가장 빨리 접한 초슈와 사쓰마번의 사무라이들이었다. 1860년부터 1870년대에 걸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지를 시찰하여, 일본이 어디쯤 있고,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를 파악한 사람들이었다. 중국 공산당을 만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학생운동의 바탕에도 지적 윤리적 사상적 자부심이 있었다. 부모 세대보다도 우리가 훨씬 많이 배웠고, 당시 국정 주도(군부독재) 세력보다도 우리가 경제도, 사회도, 역사도, 세계도 더 잘 알고, 더 도덕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어린 치기이기는 했지만, 담대한 변화와 혁신의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지적, 도덕적, 사상적 자부심에서 나온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담대한 변화와 혁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오히려 그 움직임이 실종된 것은 그 중심 세력의 노화 탓도 있고, 수입할 사상이론도 없는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한국사회의 모순부조리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집요한 천착의 부족으로 인한 지적, 사상적 자부심의 상실이 아닐까 싶다. ‘왜?’ ‘왜?’ ‘어디부터 어떻게 고칠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모순부조리의 원인과 해법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라는 얘기다. 2000년~2008년의 8년은 진보든 보수든 사상이념적으로, 조직적으로 성장, 발전한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2008년~2016년은 아무래도 퇴행한 시기 같다. 내 착각인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재창간 2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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